p. 116
모범생들은 눈치를 본다. 문제를 낸 사람과 점수를 매기는 사람의 기준, 즉 자기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알아야 하기때문이다. 정답을 맞히려는 것은 문제를 내고 점수를 매기는 권력에 따르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그저 권력에 순종했을 뿐이면서 스스로의 의지로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모범생의 착각이다. 그 착각 속에서 스스로를 점점 더 완강한 틀에 맞춰가는 것이다. 

p. 193
그 시절 우리에게는 수많은 벽이 있었다. 그 벽에 드리워지는 빛과 그림자의 명암도 뚜렷했다. 하지만 각기 다른 바위에 부딪쳐 다른 지점에서 구부러지는 계곡물처럼 모두의시간은 여울을 이루며 함께 흘러갔다. 어딘가에 도달하기위해서 말이다. 그때 우리 모두는 막연하나마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지금과 다를 거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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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8
남들에 의해 소환되는 그 시절의 나도 싫었고, 그들이 알고 있는 그 시절의나인 척하고 있을 게 분명한 현재의 나도 싫었다.
여러 사람과 공유한 시간이므로 누구도 과거의 자신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하거나 유기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그처럼 과거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사람들끼리 너무 오랜 세월을 만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턱을 치켜들며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사람들은모든 게 일회성이므로 그래도 된다고 대꾸했다.

p. 84
혼자라는 건 어떤 공간을 혼자 차지하는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익명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뜻하는 거였다.

p. 112
약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감지하는 더듬이 하나를 더가진다. 약점은 연약한 부분이라 당연히 상처 입기 쉽다. 상처받는 부위가 예민해지고 거기에서 방어를 위한 촉수가 뻗어 나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약점이 어떻게 취급당하는가를 통해 세상을  읽는영역이 있다. 약점이 세상을 정찰하기 위한 레이더가 되는 셈이다.
그들은 자주 위축되고 두려움과 자괴감에 빠지지만 그런태도를 되도록 감춰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약점이 있다는 걸 공유하면 편해지긴 하지만 무시당하는 걸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점을 숨기고 방어하고 또 상처받았을 때 태연하게 보이는 법을 연구하면서 타인을 알아간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약점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 이 있을까.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나를 조종하고 휘두를 힘을 가진다. 우리는 장점의 도움으로 성취를 얻지만 약점의 만류로 인해 진정 원하던 것을 포기하거나 빼앗긴다. 어쩔 수 없이 약점은 삶의 결핍과 박탈을 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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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9-30
참 이상한 일이야. 스위트룸을 포기할 준비가 되었을 때 백작의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친구나 가족과 헤어지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역에서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를 배웅한다. 사촌을 방문하고 학교에 입학하고 군대에 입대한다. 결혼을 하고 외국 여행을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가까운 사람의어깨를 붙잡고서 그가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고, 머잖아 그로부터 소식을 듣게 될 거라는 생각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것은 인간경험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작별을 고하는 법은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물건과 작별야만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배우려 들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친구에 집착하는 것보다 더 극성스럽게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집착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꽤 많은 비용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그 북건들을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옮긴다. 표면의 먼지를 떨고 광을 내며, 가까이에서 너무 거칠게 노는 아이들을 나무라기도 한다. 그런물건들에 계속해서 추억이 쌓여 점점 더 중요성을 띠게 되는 것을허용한다. 우리는, 이 장식장은 우리가 어렸을 때 안으로 들어가 숨던 장식장이야,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우린 이 은색 촛대들을 탁자 위에 나란히 놓아두었지, 이게 바로 그녀가 한때 눈물을 닦던 그손수건이야, 같은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정성껏 간수해온 이런 물건들이 친구나 동반자를 잃어버리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진정한 위로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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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5
"그게 내 거라면야 얼마든지 먹어도 좋다는 걸 하느님도 아실 겁니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건 사람을 굶어 죽게 할 수는 없잖아요."

p. 84
"핍, 미쳐서 날뛰다가도 그 날뛰는 짓을 멈추기도 하는 거,그게 바로 인생이다."

p. 179
‘내가 미스 해비셤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조의 대장간에서 정직한 대장장이로 자랐다면 훨씬 더 행복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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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1
그림을 보면 볼수록 제스에게도 이 그림이 점점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림에는 있지도 않는 소년의 존재감이 점점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존재감은 모든 것을,
강 둔치와 하늘과 심지어 강 전체를 압도했고, 그녀를 그림 속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바다 쪽으로 이끌었다.

p. 59
갑자기 알 수 없는 시선이 느껴졌다. 제스의 몸이 한순간 뻣뻣해졌다. 이곳에 누군가가 있다, 나 아닌다른 누군가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머릿속을 덮쳤다. 제스는 동작을 멈추고 강과 둔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p. 67
"이 강은 안전해. 다른 강들과는 다르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 강은 물살이 너무 세지도 않고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아. 갈대를 평평하게 눌러주기에는 충분하지. 네가 천방지축처럼 행동하지만 않는다면 저 강물도 숙녀처럼 얌전해질 거다."

p. 95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단 하루도, 1분 1초도미래나 과거를 생각하는 데 허비하지 말고 현재를 살아가는 데 집중하라고, 용감한 전사가 되라고 말이다.

p. 97
"진짜 존재하는 것은현재뿐이고, 과거와 미래는 단지 현재를 좀먹을 뿐이야. 그건 아무것도 주는 것 없는 날강도에 불과해" 

p. 222
"사람의 일생을 보는 것 같지?"
"일생이라고?"
"강의 일생일 수도 있고."
"강은 여기에서 태어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거리만큼흘러가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곧게 때로는 구불구불 돌아서,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바다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흐르는 거야. 난 이 모든 것에서 안식을 찾아."
"어떻게?"
"강물은 알고 있어. 흘러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든, 어떤 것을 만나든 간에 결국엔 아름다운 바다에 닿을것임을 알고 있니? 결말은 늘 아름답다는 것만 기억하면돼"
"하지만 죽음은 아름답지 않아."
"아름답지 않은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겠지."
"삶이 항상 아름다운 건 아냐. 강은 바다로 가는 중에많은 일을 겪어. 돌부리에 채이고 강한 햇살을 만나 도중에 잠깐 마르기도 하고, 하지만 스스로 멈추는 법은 없어. 어쨌든 계속 흘러가는 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그리고바다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하지. 그들에겐 끝이 시작이야. 난 그 모습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

p. 269
울어야 할 순간에 울음을 참으면 병 이 난다. 그 시간을 충분히 누린다면 모든 것은 제자리를찾아갈 것이다. 그녀가 그럴 것처럼. 아빠에게는 언제나강하고 결단력 있는 엄마와 아빠를 진정으로 사랑하는딸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서로에 대한 추억이 있었 다. 그것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위한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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