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 넌 나랑 사귀는 거 싫어?"
"......싫은 건 아닐지도, 아마
"뭐야, 그게."
"너한테 실례일 수도 있지만 약간 재미있을지도...... 싶거든. 세 가지 조건이랬나? 결국 일반적으로 말하는 연애를 하는 게 아니잖아? 유사 연애려나 좋아하지 않는다는게 조건이고, 너만 싫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아."
"그럼 됐네. 아, 하지만 이즈미가 걱정하니까 겉으로는유사연애가 아니라 진짜 사귀는 걸로 하자. 이즈미한테도조건 이야기는 안 했거든."
우리는 그렇게 해서 그날 이상한 약속을 맺었다.
A조건부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 P34

"넌 늘 웃더라."
"아, 응, 뭐, 사실은 늘 그런 건 아닌데 웃을 수 있을 때확실하게 웃어두자 싶어서 웃을 수 없을 땐 진짜 뭘 어떻게 해도 웃어지지 않잖아." - P67

"널 좋아해도 될까."
"안돼."
"왜?"
"나 말이지......."
"병이 있어.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란 건데.
밤에 자고 나면 잊어버리거든. 그날 있었던 일을 전부"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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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 세 가지 세포 색을 섞어서 여러 가지 색을 인식합니다. 그런데 이 원뿔 세포가 조금씩 사멸되다 끝에 가서는 온 세상이 회색 톤으로 보이면서 결국 의문의 죽음을맞이하게 되는 병. 그게 바로 무채병입니다."
"데이터를 보니 신도 군이 첫 번째로 볼 수 없게 된 색은연분홍색이군요. 신도군, 당신은 무채병입니다." - P30

어른들은 아직 열일곱 살인 우리를 보며 앞날이 창창하다고 말들 하지만 내게는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1학년 때부터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진로에 관해 묻는 수업이 여러 번 있었다. 프린트물을 나눠주고 굵은 선 안을 채워 넣으라며 연필을 쥐게했다. 정답은 물론 뭐라고 적어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빈칸으로 제출했다가 혼난 기억밖에 없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른이 되고, 취직을 하고, 누군가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 노인이 되고, 손주가 생기고, 그러다 죽는다. 지극히 평범해 글로 써서 남길 필요도 없는 그런 인생을 살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빈칸은 채우지 않아도 된다 생각했다. 언젠가 뭐라고 써야 할지 알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 쓰면 된다고. 그렇게 간단히 죽지는 않겠지 싶었다. 나는 내 앞에 들이닥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죽음이 두려웠다 - P41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소중한 것을 잃으면서 살아간다. 지금 내가 너를 선택하고 오랜 친구의 손을 잡지 않은 것처럼. - P72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내가 없는 세상에서 네가 웃는 게싫어. 나 아닌 누군가를 향해 미소 짓는 모습을, 나 아닌 누군가와 맺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너에게 나보다 더 특별한 사람이 생기지 않았으면. - P141

만약에, 내가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너와 내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없었겠지.
만약에, 내가 죽는 걸 몰랐더라면.
변함없이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갔겠지.
만약에..... - P182

너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너의 웃는 얼굴을 보며 수없이 구원받았다. 그 얼굴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다. 내가 곁에 있는 동안너를 실컷 웃게 해주고 싶다.
그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이 세상에 남기는흔적이다. - P190

네가 가르쳐주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이토록 멋진일이라는 것을. 무심히 지내온 일상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색채가 사라져가는 세상에선 사랑이 미래를 향한 희망을안겨준다는 것을. - P217

‘나는 소야라고 해. 신도 소야, 넌?
・히나 다치나미 히나.‘
‘그렇구나, 히나. 한자로는 어떻게 써?
비단 비자에 능금나무 내() 자를 써
‘비단 비
‘붉은색이라는 뜻도 있어
‘아하! 내 이름. 소야의 소는 푸를 창자를 쓰는데
‘그렇구나‘
굉장해, 빨강과 파랑이잖아!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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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얘기했다. 그에게 돌아오는 말이 없어 그제야 주열 씨를 쳐다보았다. 그는 해맑게 웃는 이연이도 보지 않고 베란다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생각이 많아 보이는표정이었다. 그럼에도 그저 잘해낼 거라 믿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잔인한, 그리고 이기적인 믿음이었다.

사소한 물음에도 다정하게 답해주던 그는 이번엔 내 말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부서 이동을 한 뒤 달라진 모습이었다. 일이많아서 힘든가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부러회사 일에 관해 묻지 않으려 했다. 그게 그를 믿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 P42

"후회해요. 매일 후회해요. 그런 회사 그만두라고, 둘이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말했다면, 뭐가 힘든지 더 물어봤다면, 그날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면, 같이 있었다면......."
언제부터 울고 있었을까. 슬프다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데자연스럽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게 남은 것은 후회와 그날의 기억이었다. 하나라도 달랐다면 한 번이라도 물어봤다면, 주열 씨의 죽음을 방관한 사람. 방관한, 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들도 나 자신도 - P54

"쉽게 설명드릴 순 없지만, 정말 소중했던 사람. 정말 간절한사람. 그런 단 한 사람만이 고인의 마지막 마음을 들을 수 있는특별한 공중전화예요. 고인이 세상을 떠난 시간에만 들을 수 있어서 강주열 씨가 사망한 시간까지 와달라고 한 거고요. 물론, 언제나 연결되진 않아요. 고인이 마지막으로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야만 하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송연아 씨라면, 들을 수 있을 거예요. 누구보다 간절하고, 강주열 씨가 사랑한 사람일 테니까요."
"......."
"믿기지 않아도 믿어주세요.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곤 하잖아요." - P68

"강주열 씨는 송연아 씨와 아드님을 버린 게 아니에요. 자신이 무능력하다 느끼고 가족에게조차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신 것뿐이죠. 그러니 자신이 없는 게 더 가족을 위한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고요. 송연아 씨와 아드님이 더 잘 살기위해선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면서요."
"알아요. 송연아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겠죠. 하지만강주열 씨는 자신이 놓인 상황에서 끝까지 그것이 모두를 위한선택이라고 믿으신 거예요. 그러니까 부디 강주열 씨가 혼자였다고, 또 송연아 씨가 버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서로가 서로를…………… 너무 위했던 거예요."
"끝까지 가족을 아꼈기에 그만큼 힘드셨던 거예요." - P72

"자살로 낙인찍힌 다른 유가족분들은 어떻게 살아가세요?"
"자살 유가족분들의 삶을 물으시는 건가요?"
"좀 이상한 질문일 수 있지만, 생각해 봤어요. 만약 주열 씨의죽음이 회사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그저 자살로 끝나게 돼버린다면…………… 자살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면...... 저랑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지금이야 계속 싸우고 있지만 언젠가 이 싸움도 끝이 나게 될 테니까요. 그때 만약 자살로 결과가 나온다면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센터장님께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 누구도 낙인찍을 수 없고 자살이 낙인이 되어서도 안 돼요. 지금 송연아 씨가 하고 계신 일 모두 낙인찍히지 않은 삶을위한 싸움이에요. 자살이라는 것이 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한 사람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계시는 거예요. 설령법으로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해도 고인이신 남편분과 지금여기 계신 송연아 씨, 그 누구도 두 분께 낙인을 찍을 수는 없어요. 다른 자살하는 분들도, 다른 유가족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중요한 것은 ‘자살‘을 했다는 게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거죠" - P76

-・・・・・・도움을 받고 싶어요.
그 말에서부터 내 삶이 시작되었다. 도움을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말로, 그건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이자 홀로 걷기 위한 첫발이었다. - P122

"감사해요. 이 말, 꼭 하고 싶었어요."
"그 얘기 하러 오셨군요. 저도 정말 감사해요." - P127

"심리부검이 끝나진 않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어머님은 아영이를 죽이지 않았어요. 다만 어머님이 그렇게느끼는 것은 아영이의 마음이 어땠는지 몰랐기 때문이에요. 아영이의 마음이 어땠는지 안다면 다른 마음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소중한 이를 잃은 슬픔이요. 똑같은 슬픔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그 둘은 다른 슬픔이에요. 지금 슬픔의 방향은 어머님을 향해 있죠. 내가 이렇게 못 해서, 내가 이렇게 말해서. 하지만 아영이의 마음을 안 순간부터 슬픔은 아영이를 향할 거예요. 소중한아이가 떠나갔구나. 힘든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구나. 그걸 저희는 ‘애도‘라고 말해요. 저희가 그럴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 P158

"다영이는 기적이 있을 거라 생각해?"
"있으면 좋겠어요. 없는 것보다 낫잖아요." - P175

"스스로 상처 내는 아이들의 마음을 직접 들은 적이 있어요."
"왜 자해를 하냐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 중 대부분이 ‘어떻게해야 할지 몰라서‘였어요. 살고 싶어서 했다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다고요. 그 아이들.
모두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했던 거예요.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려다 그렇게 된 거예요. 그중에는 죽고 싶다고말한 아이도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물었죠. 잘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무섭냐고요.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죽고 싶다는 그 아이도 실은 잘 살고 싶었던 거예요.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면 저는 그 아이가 그저 죽고싶어 한다고만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자해를 하고, 죽고 싶다고했으니까요. 우리는 때로 상대를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진짜마음을 몰라주고 있는지도 몰라요." - P178

"우리는 어른으로서 더 많은 것을 봐야 하는 건지도 몰라요.
하나가 아닌 둘, 혹은 그 이상을요. 아마 아영이도 SNS에 다 담기지 않은 모습이 있었겠죠. 어머님께 보인 모습이나, 학교에서의모습이나・・・・・・ 그 모두가 아영이고,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삶일거예요." - P186

-오빠는 이 일에서 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남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거. - P236

그제야 지안이 왜 그를 불렀는지 눈치챘다. 그들에게 중요한것은 그녀가 ‘어떤 방법으로 죽었느냐가 아니라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에 대한 회고였다. 애도란, 그 삶을 받아들이고 소화해 내는 과정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대화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 그게 바로 수용이란 결지안은 진작 알아챘던 것이다. - P244

"왜 거기 올라갔어?"
모두가 물었다. 나를 담요로 감싸던 구급대원도, 내 이름과전화번호를 묻던 경찰관도 이송된 병원 의사도, 입원 처리되어나를 담당하게 된 의료진도 입원 이후 찾아온 어머니 역시 내게물었다. 왜 거기에 올라갔느냐고. 그들은 모두 내게 죽을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이유는 간단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 P267

그녀가 대리기사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녀가 차에 타는 것도 확인하지 않은 채 인사만 덜렁 건네고 뒤돌았다. 그 모습을그녀가 신경을 쓰는지 아닌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뒤돌아가는 나를 붙잡지도 않았다. 그 사실이 왜 그리 야속했는지. 그제야 나는 내 마음의 옹졸함을 보았다. 나는 항상 누군가 잡아주길 바랐던 것이다. 내가 나를 잡을 수 없어, 누군가가 잡아주길 기다렸던 것이다. - P280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었어요.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를요. 어떻게 그렇게 큰 슬픔을 지니고도 살아갈 수 있나. 어째서 계속 살아나가는 걸까. 저라면 포기하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 슬픔까지…… 견디고 싶지 않으니까요." - P286

-지금도 무너져 있어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상태랄까. 그러니까 지안 씨도………………......?
-지안 씨도 이제 쌓아 올려봐요. 다 무너트려서라도, 끝까지떨어지더라도 다시 시작해 봐요. 지금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잖아요. 이렇게 안부를 묻고, 대답하고, 대화하는 지금이 우리가살아가야 하는 곳이잖아. - P302

-지안 씨. 시간이 흐르면서 해결되는 것들이 있다지만, 그건해결하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안 씨가 말했잖아. 지안씨도 이제 노력이 필요할지 모르지. - P313

"......어머니는 왜 그러셨어?"
"그런 질문 이상해. 너도 아빠가 그렇게 갈 줄 몰랐잖아. 나도몰라. 장례식에서도 사람들이 다 묻더라. 왜 자살했느냐고. 그런데 엄마가 자살이든 아니든 죽었다는 건 나도 알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그리고 나는 엄마가 자살한 게 슬픈 게 아니라 죽었다는 게 슬픈 거야. 너도...... 그냥 슬픈 거잖아." - P350

"나는 지금도 슬퍼. 엄마가 보고 싶어. 밖에 나간다고 한 날말려보는 상상도 했어. 그런데 그래도 엄마는 나갔을 거 같아. 아무리 내가 막아봐도 그렇게 생각하면 한편으론 마음이 편해. 모두는 죽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언젠가 이 슬픔을 마주해야하잖아. 나는 그게 좀 이를 뿐이었겠지."
"......"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을 거야. 죽음은 우리도 피할 수 없고. 나는 그냥 엄마 대신 내가 슬퍼한다고 생각해. 내가 먼저 떠나면 이 슬픔을 엄마가 겪어야 했을 테니까."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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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 삶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우리는 모두 공중전화박스로 달려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화할 것이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말할 것이다.
사랑한다고.
-크리스토퍼 몰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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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뭐 별거냐, 지금 살아 있는 거! 이게 행복이지.
윤이랑 영미랑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모든 날들이 행복이지! 정말 행복사진이네. 껄껄!" - P74

"네, 마음 사진관에서 행복사진 찍을 때만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죠. 푸른 꽃은 사람들 마음에 든 멍을 찍을 때 나타나요. 원래 하얀 목화솜처럼 고운 마음이 상처로 이리 맞고 저리 맞아 검푸른 멍이 든대요. 그런데 행복사진을 찍으면 행복한 기억이 마음 아픈 상처의 기억을 덮어 아름다운 푸른색으로 변하면서 멍이 빠진대요. 하늘이 파란 건 사람들 마음의 멍을 희석시켜 주느라 꽃잎이 많이 올라가서가 아닐까 싶어요. 꽃잎은 매번 머무는 게 아니라 제가 사진 찍는 대상을 향해 간절한 마음으로 행복을 빌면 행복사진을 찍는 순간에만 나타나요."
"아... 그래서 하늘이 유난히 쨍하게 아름다운 날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시리고 눈물이 나는 것이었군요. 정말 놀랍네요." - P80

"제가 이런 말씀 드려도될지 모르겠지만...."
"해도 될지 모르겠다면 하지 마. 네 안에서도 확신이 안드는데 그런 말을 미리 까는 건 네 죄책감을 덜고자 하는널 위한 워딩이지." - P85

차별과 정서적 학대에 익숙한 사람은 동일한 상황에서자신을 지킬 용기가 나지 않는다. 박동욱 모친의 차별과 폭언은 수현이 집에서 엄마에게 받던 대접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차별 받는 대상이 오빠에서 남편으로 바뀌었을뿐, 선을 본 지 3개월 만에 집안의 뜻으로 결혼한 박동욱은사람이 착해 보여서 좋았다. 착한 사람은 자신을 아프게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착한 사람‘과 ‘우유부단한 사람‘은 의도치 않아도 다른 대상들을 충분히 아프게 할 수있다는 걸 결혼 3년 차가 되어서야 알았다. - P95

"말이 된다니까. 그러니까 메리골드지, 마침내 오고야말 행복이 있는 마을, 메리골드! 메리골드에선 말 안 되는일이 없어."
"믿어봐,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라 했으니까." - P113

"응. 근데 지금 보니까 이서야, 불꽃은 원래 어두울 때터지잖아. 마음이 마냥 어두운 날들도 사실은 저렇게 크고 아름다운 불꽃을 터뜨리려고 준비 중이었던 거야."
"아름답다. 역시 지수현 멋져. 그런데 찬란하고 근사한순간이지만 정말 순간이잖아. 불꽃놀이는 끝나도 우리 삶은 계속되니까."
"그렇지. 지금이 순간임을 알기에 더 아름다운 게 아닐까. 매일이 불꽃놀이 같다면 어떨까?"
"일상이 매 순간 불꽃놀이면... 음... 불꽃에 데어 죽을걸? 혹은 심장 터져 죽거나, 아니면 불꽃같은 아름다움도.화려함도 결국 질리겠지."
"그렇겠지? 나는 지금까지 매일을 불꽃놀이 준비하듯산 것 같아. 맹렬하게 타고 싶었나 봐."
"우리 수현이・・・ 너무 고생 많았다. 잘했어. 너 지금까지잘해왔고,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너무 잘할 거야.
가장 어두울 때가 가장 빛나는 순간일 수도 있다는 말이 있잖아. 지금 어둡고 힘들다면 삶의 축제를 준비 중일 수도있으니 현재를 즐기라고 했어. 어제를 살지도 내일을 살지도 말고 오늘만 살자고 생각하니까 그 뒤로 정말 자주 웃게됐어. 웃기지 않은 일도 웃고 나니까 글쎄 재미있어지는 거있지? 자주 웃으니까 삶이 축제 같더라."
"삶의 축제, 페스티벌이라." - P144

‘앞으로 나아가는 길엔 언제나 진통이 따릅니다. 때론그 진통이 아프고 괴로워 도망가고 싶습니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나 싶죠. 하지만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요. 당신도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고통 속에 머물지 않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고통을 지나오며 마음이 조금 어른이 된 거 같아요. 성장통이라해야겠지요. 나의 성장통은 당신이었습니다.‘
마음의 말은 하늘의 불꽃이 되어 터진다. 나의 성장통이었던 당신, 당신의 몸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늘 당신의 사랑을 갈구했고 당신의 무례를 견디어 냈으며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왔다. 그런 삶이 익숙해져 타인의 무례에 대처하는 법을 잊었으며 나를 사랑하는 법도 잊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니 남을 사랑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사랑을 갈구하던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어른이 되어도 이리 한참 아플 줄 몰랐지만 어찌됐든어른이다. 진짜 어른은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을 탓만 하지않고 자신을 보호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성장통을 딛고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도 같다. - P147

"여름에 가을을 그리지 말고 가을에 겨울을 그리지 말아요. 마지막 부탁입니다. 부디 오늘을 사세요. 지금 이 순간 행복하세요.
먼 미래의 거창한 행복을 좇느라 오늘의 사소한 기쁨을 놓치지 말고 오늘을 살아요. 나 자신을 위해서 삶은 여행입니다. 여행 온 듯 매일을 살길 바라요." - P150

운명은 그것을 우리가 운명이라 부를 때에만 운명이 된다. 스쳐 지나간다면 운명이 아닌 흘러가는 사소한 일일 뿐이다. 스스로 우연을 운명으로 만들기로 선택할 때에만 우연은 운명이 된다. 범준이 우연히 클릭한 프로그램을 흘려보낼 수도 있었지만 지원을 하는 용기를 냄으로 인해 운명이 되었다. 청년 교류 프로그램에 합격하고서도 이 도시에 오지 않을 수 있었지만 낯선 도시로 건너오는 용기를 냄으로써 운명이 되었다. 운명이라는 길은 자신의 선택과 용기로 만들어진다. - P202

"20대에만 인생의 진로가 결정되는 건 아니야. 서른 이후에 안정되게 사는 사람은 기대보다 적어. 그리고 생각보다 삶이 길어. 서른 이후도 마흔 이후도,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 이후에도 삶은 지속되잖아."
"하긴... 뉴스 보면 어르신들이 새로운 일에 많이 도전하시긴 하더라구요."
"그렇지. 어찌 보면 정해진 길이라는 건・・・ 우리가 스스로 제한하는 것일지도 몰라."
"그렇죠. 근데 형, 꿈을 꿀 자유가 있다잖아요. 그렇게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도 하는데, 꿈꿀 자유가있다면 꿈꾸지 않을 자유도 있는 거 아닌가요?"
"있지."
"근데 또 꿈꾸지 않을 자유라면서 저처럼 이렇게 살다가아무것도 되지 못하면요?"
"아무것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한걸. 아무것이 된다든가 평범하다든가 특별하다든가, 그런 기준들도 어차피 사람이 정한 거 아닌가? 내삶에 대한 기준은 내가 정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아무것이되지 않아도 괜찮은 시절이 청춘 아닌가. 방황하고 헤맬 특권을 낭비해도 될 거 같아. 사실 나는 그런 청춘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 P208

"그리고 범준아. 정해진 길이라는 건 애당초 없어.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길을 잃는걸. 그냥 묵묵히 할일을 하며 걷다 보면 결과물이라는 게 생기고 사람들은 그걸 길이라 부르는 거 같아. 아직 나도 확실하진 않지만, 그저 우리가 할 일을 멈추지 않고 걷는 게 아닐까? 여기 사진다 됐다. 뒤집어 둘 테니까 너 혼자 보고, 나는 옥상에 널어둔 필름 정리 좀 하고 올게. 오늘은 사진관에 손님이 더 안올 것 같으니까 편하게 있어." - P209

초침과 분침과 시침이 성실히 제 갈 길을 가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삶이라는 이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가는 것 아닐까. 물도 보고,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바람도 만지고, 운이 좋으면 무지개를 만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낯선 이들과도 어울려 보며 전혀 무용할 수 없는 것들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 우리는사진을 찍는다. 슬픈 순간이 아닌 행복한 순간을 찍는 이유는 행복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순간의 행복을 영원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사진을 찍고, 안개 끼고 폭풍우가 몰려오는 날에는 어제처럼 선명한 행복의 사진을 꺼내보며 살아갈 힘을 낸다.
"오늘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구나."
기적을 바랐던 까닭은 기적 안에서 살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P219

"상미 님, 무엇보다도 나부터 사랑해 주어야만 그 힘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을 제외하면모두 타인이고, 가족도 사실은 가장 가까운 타인이잖아요." - P257

"나를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자..? 뭐야이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잘 읽어봐! 뒷장도 있어! 나는 이제부터 나를 더 사랑할 거니까 당신도 당신을 사랑해!"
"그동안 참 애썼어. 고생 많았어. 수고 많았어. 잘했어.
잘 견뎠어."
"그리고 이제부터 나도 안 참아! 할 말은 하고 살 거야.
당신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관계가 가족이면, 가족한테 제일 잘해야 하는 거야. 알지?"
"내가 언제 당신한테 함부로 대했다 그래. 말을 왜 그렇게 하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그리고 당신, 젊어서는어머님 병환으로 고생하고 결혼해서는 애들 키운다고 하고싶은 거 못 했잖아. 이제 조금씩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 우리가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여야 애들도 자기 살고 싶은대로 인생을 대차게 살지. 보고 배운다잖아!" - P275

"‘아름답다‘의 어원에 대한 가설이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서 ‘아름답다‘가 ‘나답다‘로 해석될 수 있다는 설도 있어. 즉 ‘아름답다‘는 ‘나답다‘ 인 거지."
"아... 그러니까 가장 나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는 거네요?" - P294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래요."
"빈도?"
"네. 강한 즐거움이나 기쁨은 자주 오지 않을 뿐더러 기대할수록 실망도 크니까, 매일의 작고 소소한 기쁨이나 즐거움을 늘리면 행복한 일상을 살 수 있대요."
"좋은 말이네. 그러고 보면 즐겁고, 기쁘고, 살짝 설레고, 웃음이 나고, 왠지 기분이 좋고. 그런 감정들도 행복의표정일 거야."
범준이 웃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행복은 표정이 많은 얼굴이라 구운 고구마를 먹을 수 있는 적당한 허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됐건 나의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 내가 옮기는 발걸음 끝에, 그 끝에 꽃이 피건, 빗물이 튀건, 자갈밭이건 상관치 않는다. 걸음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원하는 길을모두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 길이 어떤 길이건 나답게 걸어간다면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스스로 걷는 길을 아름답게 받아들인다면 아름다운 인생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별이 빛나는 건 어둠이 있기 때문이겠지."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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