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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평점 :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숭례문과 첨성대를 알 테지만 대개는 거기에서 멈춘다. 학교에서 주도하는 현장학습이 아니라면 박물관의 문을 넘어설 일도 거의 없고, 설사 무슨 유물을 본다해도 ‘아유, 오래됐구나.’ 하는 감상 정도면 충분하다. 그 이상 깊어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문가의 영역이고, 그 이상 들어가는 일은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게 도와준 분이 유홍준 교수님이다.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따르던 국어 선생님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남도편을 선물받은 것이 교수님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인연이라고 해봤자 내가 그 분의 책을 안다는 정도일 뿐이지만, 좋아하는 선생님 덕분에 좋아할 만한 작가를 알게 되었으니 내게는 소중한 인연이다.) 유홍준 교수님의 글은 지겨운 주제를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게 도와준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나 자신이 어떤 눈으로 과거의 유산을 보아야 할 지를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그 어떤 학교 수업보다도 유용했다.
그리고 이 책,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는 지금껏 보아온 유홍준 교수님의 글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 사람은 글이 곧 인생 그 자체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흡사 내 몸에 꼭 맞는 맞춤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쉽게 읽히지만 가볍지 않고, 사뭇 진지하지만 웃음이 배어있고, 가슴이 아프지만 한편 위로를 받는다. 이러저러 얻게 되는 잡지식(?)도 무시할 수 없다.
교수님의 일생을 쌓아가는 동안 엮였던 인연들에서 받은 감동을 대체 뭐라 표현해야 할까. 하필 이 책을 읽는 동안 벌어진 12.3 비상계엄사태는 유신 시절을 겪으며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와 오버랩되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내가 늘 주장하는- “결국은 사람이다”라는 것이 교수님의 책에서도 읽혀 가슴이 퍽 벅찼다.
부록으로 실린 ‘좋은 글쓰기를 위한 15가지 조언’은 지금껏 교수님의 글을 좇아온 독자들에게 주시는 아주 큰 선물이다. 진심으로 이야기하는데, 이 책을 다 읽지 못하더라도 부록만큼은 꼭, 꼭 보셨으면 한다. 문장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꿀팁을 이제야 밝히시다니, 약간 괘씸한데?!라는 생각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나로선 교수님의 책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어 후련한 기분이었다.
ps.
지금껏 읽었던-읽으려 시도했던- 대개의 잡문, 혹은 산문집은 그 작가의 이전 작품과는 결이 달라진 문장과 소재들에 낯설어 하다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끝까지 함께 한 책이 없었던 것 같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나 싶어 금새 흥미를 잃거나, 어떻게든 적응해보려 애쓰다 되려 작가 자체를 놓아버린 적도 있다. 그 정도로 독서 편식이 심한 나인데 어째서인지 이 잡문집은 몰두해서 읽게 된다. 문장이 가슴에 깊게 박혀 들어와 좀처럼 빨리 읽을 수 없는데도 손에서 놓기 어려웠다. 이 말을 문장 어디쯤이건 넣고 싶었는데 도저히 자리를 찾을 수 없어 이렇게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