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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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다는 말은 어감이 좋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나 달리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 혹은 하지 않고 -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기만 바랄 뿐인 그 무기력함이 자못 분하다.나는 천성이 게으른 것치고는 본질적으로 투쟁하는 사람이다. 어쩔 수 없다는 말도 안 좋아하고, 어떻게든 어쩔 수 ‘있게’ 싸워서라도 바꿔야 한다는 주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저 운이 좋았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싸우면 이길 수 있을 정도, 고작 그만큼의 고통뿐이었던 것이다, 내 삶은.

헤세는 ‘견디는’ 삶을 이야기한다.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나 아마 틀림없이 신의 사랑을 배우며 자랐을 사람에게, 자신이 속한 국가가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온갖 문제를 벌이는 상황은 씻기 힘든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국가를 따를 수 없다. 그러나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하셨다. 어쩌면 감수성 예민한 예술가의 영혼은 그 괴리로 갈가리 찢기기 직전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 삶은, 견뎌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참으로 다행히도- 그는 견디는 것만 생각하지 않았다. 고통을 견뎌냄으로써 얻어지는 기쁨, 그것을 얻을 수 있는 힘에 대해 가진 지혜를 아낌없이 쏟아낸다. 때로는 산문으로,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시로 -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으로 말미암은 결실이 바로 이 책, < 삶을 견디는 기쁨 >이다.

📝
아픔을 주는 것은 다른 것에 있지 않다.
그것을 거부하는 마음이 네게 아픔을 줄 뿐이다.
네가 그것과 함께 한다면
고통은 고통이 아니며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P. 110)

📝
오, 나는 안다.
편안한 날을 맞이하자마자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랑스러운 나날을 고통으로 보낸다는 것을
(쉼 없이 달려감 중에서)

데미안을 읽어본 적이 있다면 알 테지만, 사실 헤세의 문장은 술술 읽히는 쪽은 아니다. 꼬여 있고, 불편하다. 졸린 상태에서 읽으려 들었다간 까만 건 글자구나 하는 깨달음. 얻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체하지 않도록 천천히, 꼭꼭 씹자.

분주한 걸음을 멈추고 담벼락 아래 소복한 들꽃을 살펴보듯이, 하늘을 떠가는 구름을 오래도록 바라보듯이, 여유를 부려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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