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나의 집
오노 후유미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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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오지 않는 편이 좋았을 텐데. 가능한 한 빨리 나가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나에게는 이제 집이 없다. 아무리 기분 나쁜 공간이라 할지라도 내게는 돌아갈 곳이 필요했다.

하이츠 그린 홈, 희고 투박한 벽과 녹색의 문에 갇힌 그곳이 아라카와 히로시의 유일한 집이었다. 고작 16살, 고등학생 신분으로 부모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 이상 나은 곳을 찾기도 어려웠다. 독립한 이상 집을 꾸미고 삶을 꾸리는 것 모두 혼자 힘으로 해야했다. 그래도 그 '집'이 있어 더는 유목민처럼 떠돌며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안정적인 삶을 살기 바랐다. 우편함에 정체불명의 편지가 배달되고, 좁은 골목길이 기분 나쁜 낙서로 뒤덮이고, 똑똑 물소리가 떨어지는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런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우는 터라 작가 이름도 거의 외우지 않는 편인 내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인 오노 후유미의 호러 (성장) 미스터리. 미국의 호러 작품은 밑도 끝도 없이 사람부터 죽이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이나 일본 등 동양의 호러는 대개 마음 한켠이 씁쓸해지는 서사를 담고 있다. 아마 내가 끌리는 것도 그 부분이리라.

집, 나의 집. 물리적인 부모가 있다고 해서 그곳을 꼭 집으로 부를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 마음아프다. 아이라면, 응당 그곳이 집이어야 하지 않겠나.

<십이국기> 시리즈를 통해 익히 체감한 필력이었으나 단권의 소설에서 그 능력은 거의 최고조로 발휘된 듯 하다. 얼핏 잔잔하게 이어지는 문체에도 놀라운 흡입력을 보여줘서 한눈 팔 기회가 없었다. 오히려 아까운 기분에 억지로 끊어 읽었다. 빨리 다음 장을 읽고 싶은 마음과, 오노 후유미의 작품을 이리 빨리 끝낼 수 없다는 마음이 치열하게 부딪쳤다. 그래도 참,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너무 아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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