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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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ius (악랄한)
Genetics (유전학)
Eugenics (우생학)

책 표지 디자인에 쓰인 이 세 단어가 이야기의 핵심이자 전부이다. 우성 인자만으로 교배하면 후손은 반드시 우성의 존재가 될까? 그렇다면 동일한 논리에 따라 악도 유전될 것인가?

소소, 소셀로, 소설 <부친 살해자>의 주인공인 코바, 아내의 이름을 딴 K. 카토, 곰보라는 뜻의 초푸라, 절름발이라는 의미의 게자, 종교의 뜻을 묻힌 신부 그리고 인간 백정까지. 그 이름이 무엇이 되었던,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후세 사람들은 사내를 '직업 혁명가'라고 불렀다.
(프롤로그 중에서)

사내의 등장은 화려하다. 은행 지붕 위에서 사제 폭탄을 던지고 죄의 고과에 상관없이 사람을 죽인 후 '그분'의 공작금으로 쓰일 돈을 갈취한다. 혁명을 위한 혁명, 목적을 위한 무자비함.

그런 사내에게 '어쩔 수 없는' 악함의 명분을 제공한 것은, 내 생각에, 사내의 어머니이다. 기적의 케케.

유형지로 떠나기 전날 찾아온 아들에게 어머니는 수십년 동안 감추었던 자신들의 과거를 들려준다. 사내의 이름 또한 그처럼 감춰진 채로 어미의 과거와 수시로 교차한다. 추악하고 역겨운 고백 끝에 사내는 절망했을까? 어미를 동정했을까? 아니 - 사내는 오히려 악을 대물림받았다.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혀 악의가 되어버린 리센코 후작의 승리였다.

종교의 관점에서도 과학의 관점에서도 악의 유전자는 없다. 존재하지 않으니 유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자리한 악이 점점 커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악의 근원이 어디에 있기에 대를 거듭할 수록 더 강해지는 것일까.

이야기의 끝에 드러난 사내의 이름 때문에 놀라느라 자칫 놓칠 수 있겠으나 이야기의 궁극적인 목적 - 인간 스스로 원인이 되어 발현하는 악의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악이 유전되는 일이 없도록 어떻게 자신을 지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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