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빠진 소녀
악시 오 지음, 김경미 옮김 / 이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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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심청이 신부로 바쳐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용왕의 신부가 될 운명의 심청이 그 길을 거부하는 것으로, 또한 미나라는 평범한 소녀가 운명으로 주어지지 않은 길에 스스로의 의지로 뛰어드는 모습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가 재미교포 2세라는 게 중요하게 작용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책을 읽는 내내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티브로 삼은 설화도, 묘사되는 것들도 분명 익숙한 우리네 이야기인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사뭇 달랐다. 요즘의 흔한 판타지와는 결이 다른, 미하엘 엔데 식의 환상문학 풍이다.

용왕과 신과 혼령들이 '살고' 있는 도시와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환상적이고 판타스틱하다. 의도적으로 현재형으로 쓰여진 문장들은 미나가 겪는 모든 일들에 독자를 실시간으로 끌어들인다. 대부분의 배경 설명과 감정들은 결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아 전능한 3자의 입장인 독자들마저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고 희뿌연 상태로 몰아넣는다. 그럼에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대체 운명의 붉은 끈은 어디로 이어지는가. 용왕에게 걸린 저주는 무엇인가. 모두가 운명을 떠드는데 미나와 모두는 과연 의지로 운명을 세울 수 있을까.

이야기 속 모든 인물들이 그토록 생생하고, 입장의 반전은 허를 찌르며, 이야기의 끝은 흡족하다.

설화를 재해석해서 구성하는 작품이 많이 나와있지만 이 책은 그중 어디에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로맨틱 판타지라는 카테고리는 이 책을 담기에 부족하다. '압도적으로 아름답다'는 평가는, 실로 부족하지 않은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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