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 양조장집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평점 :
품절


와삭와삭 대나무 숲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쓰디쓴 말차가 아닌 혀를 델 듯한 뜨거운 우유와 설탕을 듬뿍 넣은 홍차를 준비한다. 방금 구워낸 바삭하고 노릇한 식빵에 아낌없이 버터를 바른 다음 꿀을 왕창 뿌리고 가장자리를 뜯어내 홍차에 푹 담가 먹는다. 와삭와삭, 소리를 들으며 흐물흐물해진 식빵을 와앙! 좌부동자의 감나무에는 감이 풍년이다. 감을 따먹을 수는 없으니 별 수없이 홍차를 호르륵, 마신다. 긴카처럼.


좌부동자니, 감나무 아래 소년의 백골 시신이니 하는 이야기는 평소 즐겨읽던 일본 미스터리 호러 계열의 소설이나 백귀야행 같은 만화에서 익히 보던 것이지만, 이 이야기는 그런 것들과 결이 다르다. 다 보고 난 뒤 뒤가 으스스해진다거나, 어쩐지 뒤끝이 찜찜하다거나 하지 않는다. 숨 가쁘게 몰아치는 액션도 없고 뱃속이 찡하게 오그라드는 오싹함도 없지만, 이상하게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다. 중간에 끊어버리면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듯 멍해질 것이 두려웠다. 잘 시간이 지났지만 어쩔 수 없다!


생활력이라고는 도무지 없지만 예술가인 아빠와 둥실둥실 떠다니다가 가끔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가는 엄마, 엄마와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할머니, 고작 한 살 더 많은 예쁜 고모, 그리고 긴카. 어느 나라 어느 가정이나 사연 없는 집이 없다지만 한 권 책 속에 무슨 놈의 사연이 이리도 꼭꼭 들어찼나. 그럼에도 가슴이 막히지 않는다. 긴카라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힘내 - 긴카!


긴카, 내리는 눈을 은빛의 꽃에 비유한 이름. 멋진 이름이다. 이런 이름을 딸에게 지어줄 수 있는 아빠라면 멋진 게 당연하다. 멋진 이름을 가진 긴카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이다.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결국엔 멋진 가족이었다.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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