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아프리카
김충원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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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진이 좋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플래시 팡팡 터지는 콤팩트 필름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터질듯 뛰어대던 심장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리 좋은 카메라는 아니지만 지금도 특별한 기록을 남기고 싶을 때는 DSLR을 목에 건다. 얼핏 스쳐 지나갈 장면도 카메라를 들고 나서면 내 눈에, 가슴에, 콕콕 들어와 박힌다. 찰칵. 찰칵. 요즘은 또 어떤가.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은 이제 미러리스 카메라 못지 않은 성능을 자랑한다(솔직히 DSLR과 비교할 수는 없다). 덕분에 땅바닥에 떨어진 꽃잎 송이, 그늘 아래 졸고 있는 길고양이, 어느 집 담벼락에 작게 그려진 낙서들이 차곡차곡 데이터로 쌓인다. 아, 그렇구나. 내가 좋아하는건 어쩌면 사진이 아니라 사진으로 남겨지는 기록물들인가보다.

'스케치 아프리카'는 김충원 선생님-작가님이라고 해야할 텐데 어쩐지 선생님이 더 어울린다-이 카메라 없이-맙소사- 스케치북과 연필 등 기본 화구만 챙겨서 떠난 아프리카 여행의 기록들이다. 책장을 가만 가만 넘겨보면 스크랩북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고, 그냥 스케치북 같기도 하다. 하긴 제목부터 '스케치' 아프리카다. 러프한 연필 스케치로 끝난 페이지도 있고, 뒤늦게 물감으로 채색한 페이지도 있다. 얼핏 정돈되지 않아 보이기도 하는 책인데 나도 모르게 자꾸 페이지 속 동물들을, 풍경들을, 아이의 얼굴을 손 끝으로 쓰다듬게 된다.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에 날 것을 날 것 그대로 보셨을 테다. 렌즈를 통하지 않고 맨 눈으로 바라본 풍경을 오롯이 선생님의 손으로 종이 위에 옮기셨으니 그토록 살아서 나를 매혹시켰으리라. 책을 덮고난 지금도 눈 앞으로 얼룩말들이 무리지어 달리고, 지금껏 미처 그 고단함을 알지 못했던 숫사자의 갈기가 바람에 헝클어진다. 여기는 세렝게티 초원이다. 달빛 아래 일렁이는 빅토리아 호수이다. 신성한 땅, 킬리만자로 산이다.

내게 아프리카를 선물해주신 김충원 선생님과 진선북스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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