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번역에서 완전히 중립적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둘째, 이것이 발생하는 원인이 번역 자체에서 온다기보다는 해석 행위에서 온다는 점이다. 셋째, 읽기 자체가 해석 행위라는 점이다. 즉 텍스트를 중립적으로 읽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읽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맥락을 텍스트에 투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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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개입 없이 단지 복제나 재현만 하는 번역 또는 다른 어떤 글쓰기는 생각할 수 없다.(……) 어떤 텍스트도 다른 텍스트를 단순히(……) 중립적으로만 전해줄 수는 없다. 여기에는 늘 해석의 요소가 관련되기 때문이다.(……) 모든 번역, 특히 문학 번역은 번역가의 창조성을 포함한다. 해석 자체가 창조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진 보즈 바이어, 『문학의 번역』)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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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 번역이 더 창조적이라는 역설이 생겨난 이유에는 번역의, 적어도 문학 번역의 이상으로 제시한 ‘복제’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목표라는 점도 있다. 번역에는 불가피하게 번역가의 해석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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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베르길리우스는 자연을 모방하여 민족적 서사시를 쓰려고 했는데, 호메로스가 이미 할말을 다 해버려 난감해하다가, 자연은 모방할 수 없지만 호메로스는 모방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정리했다고 한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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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mimesis, 즉 자연의 모방이라는 개념은 변형된다. 라틴어의 우아함의 절정을 이루는 로마 문학의 ‘은의 시대’ 동안 퀸틸리아누스, 키케로 등 수사학 이론가들은 mimesis 이야기는 하지 않고 대신 imitatio에 관심—물론 라틴어로—을 기울이는데, 이것은 언뜻 같아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이제 문제는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문학적 모범의 모방이다.(폴 프라이, 『문학 이론Theory of Literature』)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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