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은 엉큼한 파충류 같죠." 낯선 남자가 말했다. "멋대로 나타나서는 자기가 원하는 만큼, 길게는 평생 몸에 머무는데, 운이 좋으면 작별 인사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하죠."
-알라딘 eBook <페루에서 온 신사> (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중에서 - P16
낯선 남자는 예수가 나사로를 살린 뒤에 지었을 법한 가르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마크를 보았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믿음을 가지시오, 형제여, 이제 가봐도 좋습니다.
-알라딘 eBook <페루에서 온 신사> (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중에서 - P17
만약 원한다면 아이네이아스가 카르타고를 떠나 항해하던 도중에 들른 고대도시 쿠마에 유적지에 데려가주겠다고. 거기에 망자의 땅으로 가는 입구 아베르누스가 있었다. 아베르누스 호수에.
-알라딘 eBook <페루에서 온 신사> (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중에서 - P33
"이유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받아들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모두가 자기가 최고라고 믿는 자아를 요구해요. 실제 자기가 아닌, 될 수 없는 모습으로 사랑받기를 기대하면서요. 그렇지만 삶의 작은 기적은,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알 수 없는 기적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퇴짜 놓고, 받아들이더라도 못마땅해하고 경멸하고 무시하고 때로는 심지어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진정한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순간, 그들의 시간이 멈춥니다. 두 사람이 한날한시에 죽지 않는 이상, 남은 한쪽은 영영 회복하지도 잊지도 못하고 몇 생이 지나서라도 상대를 다시 만날 때까지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말을 빌리자면 ‘서로가 서로의 것이었다’란 거죠.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돌아옵니다. 언제나요. 그러나 기다림은 극심한 고통입니다. 함께 살기 위해 기다릴 뿐 아니라 또 같이 죽기 위해 기다리지요. 일시적인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삶이니까요." 일행은 라울의 말을 넋을 놓고 듣고 있었다.
-알라딘 eBook <페루에서 온 신사> (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중에서 - P37
"안 돼, 안 돼." 클레어가 말했다. "오늘 밤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 같아. 공간이 열리고, 실수를 만회하고, 얽힌 운명이 풀리고, 모든 것이 바로잡히는." "이곳이 그런 공간인가요?" 라울이 물었다. "글쎄요, 여기를 둘러봐요. 배는 멈춰 섰고, 우리는 시간을 벗어났어요. 고민거리는 남겨두고 왔고 즐거움은 이제 시작이니,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거예요. 그럼 여러분, 이것으로 오늘은 이만 작별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안 그러면 내일 아침 해가 뜰 때 우리 꼴이 볼만할 테니까요."
-알라딘 eBook <페루에서 온 신사> (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중에서 - P54
"네." 라울은 좀 지나치다 싶게 빨리 대답했다. "전에 말했잖아요. 내가 아는 사람 다 마찬가지예요. 누군가는 그런 척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을 속이려고 애쓰지만, 자기 진짜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어쩌다 가끔은 마음에 들 때도 있겠지만. 그런데 햇살이 살갗에 내리쬐고 물이 가까이에 있고 나 자신이 꽤 괜찮다 싶은 순간이 오면, 그 감정을 애지중지 잘 지키려고 애쓰죠. 이것 말고 나한테 이 비슷한 느낌을 주는 건 실내악하고 테니스뿐이네요."
-알라딘 eBook <페루에서 온 신사> (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중에서 - P74
그 순간부터, 마치 마법에 걸린 듯, 두 사람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 떼놓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 사이에 순식간에 생겨난 친밀감에 이미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서로를 향한 적대감과 악의와 경멸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걸 느끼지도 못하고 꿈에서조차 상상도 못 했다는 걸 그들은 몰랐다. 서서히 자라나거나 꽃을 피운 게 아니라, 불쑥 솟아났다
-알라딘 eBook <페루에서 온 신사> (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중에서 - P108
두 사람의 길을 터준 것은 우정이 아니었다. 그들을 기만한 적대감이었다.
-알라딘 eBook <페루에서 온 신사> (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중에서 - P109
왔다가 갔다?라울은 잠시 후 양치질을 하면서 혼잣말로 속삭이고,왔다가 갔다?잠들기 전에 잠시 책을 읽으면서 중얼거리고,왔다가 갔다?마침내 침대 옆 등을 끄고 자려 할 때 생각했다. 육십 년 전에 왔고 곧 사라질 자기 삶을 생각했다.안 될 게 뭔가, 라울은 생각했다.그런거지.
-알라딘 eBook <페루에서 온 신사> (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중에서 - P122
라울은 마고를 돌아보았다. 마침내 물었다. "춥지 않아요?" "얼어죽겠어요." 마고가 대답했다. 라울은 그 말을 기억했다. 평생 기다려온 말이었다.
-알라딘 eBook <페루에서 온 신사> (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중에서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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