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나는 그렇게 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서른세 살, 그것이 그 당시 나의 나이였다. 아직은 충분히 젊다. 그렇지만 이제 ‘청년’ 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도 달리고 있을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공백 속에서도 그 순간순간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온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공백 같은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신"은 "존재 자체" ipsum esse 이며, 그것은 "스스로 자립해있는 존재 자체" ipsum esse subsistens 이다. 그리고 모든 "있는것" 또는 "존재하는 것" ens 은 "스스로 자립해 있는 존재자체" 에 "한몫을 차지하기" participatio 때문에, 그것이 없지않고 있게 된다. "존재하는 것"이 된다.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은 신과 하나가 된다.
마이스터 엑하르트는 우리를 향하여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라" 고 외친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치 아무것도 "가진 것" 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아무것도 "아는 것" 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처신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 이 없는 것처럼 그러한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중세 철학의 비교: 아우구스티누스 vs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의 사상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과 비교해 본다면, 후자는 "올라감"을 강조한 나머지 사물의 세계를 경시해 버릴 위험이 있다. 그에 반하여, 전자는 사물의 세계, 현실의 세계를 중시하여 그러한 세계에로 "다가가서", 그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신에게로 나아가려 한다.그리하여 세계에 대한 인간의 과업이 강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