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느껴 보는 어두컴컴하고 불안정한 감정이었다. 그 칠흑 같은 구멍에 잡아먹혀 버리고 말 것 같았다. 이런 케케묵고 질척한 기분은 아주 오래전, 막 유령이 되었을 때나 겪었던 것이다. 산에서 떨어진 흙이 뒤섞여 불길한 황토 빛을 띠는 하천의 한복판에서, 물의 까만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 <칵테일, 러브, 좀비>, 조예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d669427668c54faa - P52
물은 이영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영이 건넨 이름을 받아 들었다. 이영도 물의 눈을 바라봤다. 흙과 비는 끝없이 쏟아졌다. 그것은 마을을, 하천을, 소나무 숲을, 물과 숲의 세상을, 물과 숲의 울타리를 모조리 뒤덮었다. 나무는 하천으로 구르고 하천은 마을을 침범했다. 지붕이 가라앉고 벽과 바닥에 붙어 있던 집기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 물은 세상이 뒤집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또다시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이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물은 있는 힘껏, 이영을 껴안았다. 이영도 여울을 껴안았다. - <칵테일, 러브, 좀비>, 조예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d669427668c54faa - P57
어머니를 괴롭히고, 늘 따라다니면서 그녀를 무섭게 했던 나쁜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미래에서 온 아들, 비극의 증거, 불행의 씨앗인 바로 나라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이게, 어떻게…. 시간을 되돌려 준다며 깔깔깔 웃던 목소리의 주인은 신이 아니라 악마였다. - <칵테일, 러브, 좀비>, 조예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d669427668c54faa - P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