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공국은 교황의 지원하에서 베네치아 군대와 합세한 루이 12세의 군대에게 1497년에 점령되었다. 체사레는 아버지 알렉산데르 6세와 루이 12세의 지원하에서 로마냐 지방을 영유하게 되었다. 체사레는 "통일 이탈리아"라는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밀라노는 루이 12세가 지배했고, 베네치아는 강력한 독립 공화국이었다. 더구나 교황인 아버지가 급사함으로써 로마냐에서의 그의 국가 수립 계획은 좌초되었다. 체사레는 이에 피렌체와 볼로냐를 겨냥했고, 두 도시는 루이 12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루이 12세는 체사레를 견제하기 위해서 스페인의 페르난도 3세와 함께 나폴리 왕국을 분할했으나, 프랑스 군대는 역부족으로 곧 철수하고 나폴리는 시칠리아와 함께 스페인의 장기 지배하에 들어갔다. 마키아벨리는 통치 역량과 군사력을 겸비한 체사레에게서 외세의 각축장이 된 조국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부분적으로는 그를 모델로 삼아 「군주론』을 썼다. (7p)

<군주론>의 마지막 장에서 "야만족의 폭정"으로 인해 유럽의 변방이 된 조국 이탈리아의 구출과 통일을 기원하는 마키아벨리가 그러한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피렌체는 별로 길다고로 인해 유럽의 변방이 된 조리가 그러한 사명을 수행하- 별로 길다고 할 수 없는 마키아벨리의 생애에서도 여러 정권들(메디치 가문을 대체한 사보나롤라의 신정 정치, 소데리니의 집권, 메디치 가문의 재기)이 등장한다. 상인과 귀족의 도시 피렌체는 일시적으로 사보나롤라와 소데리니 등의 통치 시기도 있었지만, 1434년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한 대(大)코시모(코시모 데 메디치, 1389-1464렌체의 국부(Pater Patriae)"라고 불린다), 피에로 디 코시모 데 메디치(1416-69), "대인(il Magnifico)" 로렌초(로렌초 데 메데치, 1449-92), 피에로 데 메디치(1471-1503),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우르비노 공작 1492-1519)를 거쳐 알렉산드로(1511-37)로 계승되는 메디치 가문의 대(大)코시모 가계의 100여 년 통치하에 있었다. (8p)

선조가 의사였다는 연유로 메디치(Medici)라는 씨성을 얻게 된, 세 가계(또 하나의 가계인 조벤코의 가계까지 감안하면 네 가계이다)로 이루어진 메디치 가문 중에서 특히 대(大)로렌초 가계는 피렌체를 당대 유럽의 주도적 금융도시로 만들었고 막대한 재부로 예술가들(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을 후원했다. 메디치 가문은 4명의 교황들(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피우스 4세[조반니 안젤로 데 메디치, 1499-1565], 레오 11세)과 2명의 프랑스 왕비들(카트린 드 메디시스, 마리 드 메디시스)을 배출한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영욕을 상징하는 가문이었다.(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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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충분히 범블 씨를 따라다녔고 노파의 장례 준비도 잘 마쳤으니, 어린 올리버 트위스트의 뒤를 쫓아 올리버가 여전히 토비 크래킷이 버리고 도망간 도랑에 쓰러져 있는지 확인하러 떠나는 것이 좋겠다.
(454-455/9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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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495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 스페인의 페르난도 2세, 베네치아 공화국, 밀라노 공국이 결성한 제1차 신성동맹(Holy League)의 승리에 의해서 1496년 샤를 8세의 프랑스 군대는 이탈리아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샤를 8세의 뒤를 이은 루이 12세는 베네치아와 동맹을 맺고 밀라노를 공격했다. 당시 그는 이혼 문제로 교황청의 도움이 필요했고,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아들 체사레 보르자의 권력과 영토 확보를 위해서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체사레의 로마냐 지방에 대한 야심을 돕기 위해서, 교황은 프랑스의 밀라노와 나폴리에 대한 야심을 돕기위해서 야합하게 되었다. (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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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고가 제 기능을 하려면 범주화는 필수다. 범주화는 생각의 틀을 잡는 작업이다. 우리가 모든 주제, 모든 시나리오 하나하나를 정말로 유일하다고 본다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무슨 말로 묘사하겠는가.
(270/614p)

이번에도 언론은 이런 본능의 친구다. 엉터리 일반화와 고정관념은 언론이 일종의 속기처럼 사용하는 것으로, 빠르고 쉽게 소통하는 방법이다.
(270/614p)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소는 종교나 문화, 국가가 아니라 소득이라는 점이다.
(286/614p)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범주에 늘 의문을 제기하는 효과적인 방법 다섯 가지가 있다. 내부의 차이점과 집단 간 유사점 찾아보기, 다수majority에 주의하기, 예외 사례에 주의하기, 나는 평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하나의 집단을 다른 집단으로 일반화할 때 주의하기가 그것이다.
(290-291/614p)

사실충실성은 지금 저 설명은 범주를 이용한다는 걸 알아보는 것이고, 그 범주가 오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일반화는 막을 수 없어서, 억지로 막으려 하지 않는 게 좋다. 대신 엉터리 일반화를 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반화 본능을 억제하려면 내 범주에 의문을 제기하라.

(303/6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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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본능은 우리의 제한된 관심과 자원을 개별 사례나 눈에 보이는 피해자, 또는 우리 눈앞에 있는 구체적인 것에 쏟게 만든다.
(238/614p)

언론이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하게 하든, 사람 목숨을 구하는 데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곰보다 가정 폭력에 훨씬 더 신경을 써야 한다.
(246/614p)

1918년 스페인 독감이 발생해 전 세계 인구의 2.7%가 목숨을 잃었다. 백신이 나오지 않은 독감이 발생할 가능성은 지금도 여전히 위협적이어서 모두가 이를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2009년에는 처음 몇 달 동안 신종플루로 수천 명이 사망했다. 2주일에 걸쳐 그 소식이 뉴스를 도배했다.
그러나 2014년의 에볼라와 달리 신종플루 사망자는 2배로 증가하지 않았다. 심지어 직선으로 진행되지도 않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신종플루는 처음 경고가 나왔을 때만큼 공격적이진 않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언론은 여러 주 동안 공포심을 계속 자극했다.
(247/6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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