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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아스 평화조약이 맺어진 다음에도, 아르고스는 캐스팅 보트를 쥔 국가로서 그 존재감이 부각되었다. 아르고스 측으로서는 스파르타와 아테네간의 적대 관계를 십분 이용하여, 유리한 쪽과 동맹을 맺어 국익을 극대화 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니키아스 평화조약에 강한 불만을 품었 던 코린토스나 테바이 같은 나라들이 접촉했던 나라도 바로 아르고스였다. (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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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의 신화적 인물로서는 아르고스의 공주로 제우스의 사랑을 받고 이집트에 가서 국모신이 되었다는 이오, 역시 제우스의 사랑을 받았던 공주 다나에와 다나에의 아들 페르세우스, 트로이아 전쟁 당시 그리스 측 총사령관 아가멤논 등이 잘 알려져 있다.(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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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행복한 책읽기>

김현이 재구성한 프랑스 현대 비평은 ‘사르트르-바슐라르-바르트-블랑쇼’의 4각형으로 이루어지는바, 이들의 키워드를 차례대로 나열하면 참여-상상력-언어-죽음‘이다.(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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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바르트는 이런 ‘작품’의 은유로 ‘유기체‘를 드는 반면에 ‘텍스트’의 은유로는 ‘덫‘을 든다. 하나는 채워져 있고, 다른 하나는 비어 있다. 그래서 작품은 독자가 ‘읽어내는’ 것이지만, 텍스트는 독자가 ‘채워 넣는’ 것이 된다. 해서, 바르트의 다른 용어로 표현하자면 ‘작품’이 독자가 읽어내는 텍스트readerly text에 대응한다면 ‘텍스트’는 독자가 써나가는 텍스트writerly text에 대응한다.(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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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팍팍하게 느껴진다면 물에 적셨다 읽으셔도 좋겠다.”

뜻하지 않게 ‘대표적인 인터넷 서평꾼‘에다가 ‘인문학 블로거‘ 행세를 하게 된 건 내가 남다른 식견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놓고 활동하는 이들이 적어서다. 나는 하녀고 광대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느끼기 시작한다면 곧 니진스키처럼 정신의 줄을 놓게 될 것이다. 그건 슬픈 일이다. 나는 다만 읽고 쓰고 떠들겠다. 뭔가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이 많아지면 지금보다는 조금 나은 세상이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없는 건 아니다. 지금보다 조금은 더 견딜 만한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쁨을 주는 건 나의 몫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좀더 읽고 쓰고 떠들지 모르겠다. 이 ‘인문학 서재‘가 조금 더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런 정도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고 떠들 수 있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당신에게 끼니가 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대단찮은 것이어도 ‘겸손한 식사‘ 정도는 될 수 있다면 말이다.(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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