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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12월
평점 :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를 보면, 본문에 들어가기 전, 다음과 같이 존 던의 시 한 편이 나온다.
아무도 자신만으로 완전한 섬이 되지는 않는 것이니,
모든 사람이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라.
한 줌 흙이 바닷물에 씻겨 나간다면,
유럽은 그만큼 더 작아지는 것이리라.
이는 하나의 곶이 씻겨 나가고,
그대의 친구, 그대의 영지가 씻겨 나갈 때에도 마찬가지리라.
나 자신이 이 인류의 한 부분이니,
친구의 죽음은 곧 나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 하지 말라.
그것은 곧 너 자신을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 열린책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서문에서 인용
17세기 영국 성공회 성직자 존 던(John Donne) 신부가 쓴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940년 미국의 소설가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발표한 동명의 소설에 서문으로도 직접 이렇게 인용된다. 그가 직접 참전- 취재기자이면서 동시에 철교폭파 게릴라 활동까지 - 했던 스페인내전(1936~1939)과 함께 그에게 "인류의 연대(Human Solidarity)"란 무엇인가 하는 큰 영감을 준듯 하다.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는 팩션 같다. 전체적인 사건과 등장인물들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작가적 상상력과 솜씨로 당시의 상황들을 재구성하고 있다. 때론 종군기자의 시선으로 다큐멘터리영화 처럼, 때론 당시 현장에 있던 헤밍웨이나 오웰과 같은 작가의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자가 미국인이라 그런지, 특히 참전했던 작가 중 미국작가 헤밍웨이에 대해, 그리고 국제여단을 구성하던 여러 나라 중 미국인들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 점이 눈에 띤다. 여기서 정말 재미있게 읽히는 지점은 국제여단의 미국인 젊은 대학강사 출신 장교 "로버트 메리먼"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스페인내전에 참전한 주인공 젊은 미국인 교수 "로버트 조던"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당시 군국주의(전체주의)의 연대차원에서 프랑코장군의 국가주의군을 물심양면에서 직접 지원했던 독일과 이탈리아와는 달리 미국은 스페인 내전에서 자국의 이익 우선정치에 따라 표면적으로는 중립을 지키면서 합법적인 공화주의정부에 대한 일체의 직접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석유재벌 등의 프랑코반군에 대한 지원을 묵인 내지는 방조한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스탈린의 소련이 공산주의 이념의 확산과 독일과 이탈리아 우익군국주의에 대한 견제심리에 따라 유일하게 공화주의정부에 지원을 한다. 물론 결과적으로 공화주의파의 절대적인 열세를 극복하기에는 그들의 지원도 한계가 있었고, 공화주의파내부에서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간 충돌을 조장하고 방조한 것도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공화주의파에게 희망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 물론 공산주의 단체에서 중간에서 일정부분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은 있다. -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게서 고립된, 그리고 이베리아반도에 내에서도 프랑코 반군에 고립된 스페인 노동자, 농민, 그리고 핍박받던 서민들에게 유일한 국제연대의 희망이 되었던 "국제여단" 뿐이었다. 비록 소수였고 여러면에서 히틀러와 무쏠리니에게서 엄청난 군수 지원을 받았던 국가주의자반군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국제여단이었지만, 그들이 보여준 신념과 실천은 정말 "연대(Solidarity)"란 무엇인가를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연대란 그들에겐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밑바탕에 깔린 조건없는 "인류애(Humanity)" 였다.
편안한 교직생활의 개인적 안위를 뒤로하고, 국제적 연대에 대한 양심에 따라 국제여단의 지휘관으로 전선의 맨 앞에 섰던 로버트 메리먼의 모습이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로버트 조던으로 다시 부활한 것이 아닐까?
공정무역(Fair Trade)과 민중교역(People to People Trade)을 지향하는 내 삶과 그 "연대"의 차원으로 방문했던 필리핀 출장길에 읽은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는 그 어느 지점에서 그 둘이 서로 맞닿아 있었다. 문득 어릴적 읽었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다시 읽고 싶어진다.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동명 영화(1943)도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