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싱겁게 응수했다. 누가 들으면 쓸모없게 느껴지는 얘기를 하면서 핵심을 적당히 피해 가는 데 우리는 죽이 잘 맞았다. 그렇게 눈앞에 놓인 너무 어렵고 뜨겁고 슬픈 문제는 에두르고 각자 할 수 있는 만큼의 걱정을 했다.

-알라딘 eBook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중에서 - P19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낼 때마다 왜 일반 대학이 아닌 학점은행제로 학위를 땄는가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여왔지만 그는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알라딘 eBook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중에서 - P9

돌아보면 항상 어떤 장소를 지워버림으로써 삶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어야겠다 싶은 장소들은 아예 발길을 끊어서 최대한 망각할 수 있게 노력해왔지만 이 일을 맡으면 그곳에 대해 생각하고 더 알게 될 것이었다. 거기에는 일년 남짓의 내 임시 일자리가 있었고 600년 전에 건축된 고궁이 있었고 잊지 않으면 살 수가 없겠구나 싶어 망각을 결심한 낙원하숙이 있었다.

-알라딘 eBook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중에서 - P13

찬 밤바람 속에서도 여름으로의 진입은 분명히 느껴졌는데, 그건 공간이 훤하게 열리는 개방감 같은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성성하게 드러내도 될 정도로 공기가 바다가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나는 밤의 바다에서 아마도 낚시꾼들을 태우고 나갔을 어선들의 피로한 불빛을 지켜보다가 손을 흔들며 차에 올라탔다.

-알라딘 eBook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중에서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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