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코는 그 애를 조선 침략의 피해자라고 부른다. 십 년 전, 우리는 갓난아이였던 그 애를 조선에서 데려왔다. 당시의 혼돈 속에서 나는 그 애를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내가 제대로 상황을 깨닫고 인지하기도 전에 내 두 팔은 주군의 자제의 명령에 따라 그 애를 안아 들고 말을 탄 그에게 데려가고 있었다. - <벌집과 꿀>, 폴 윤 지음 / 서제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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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야마시타 도시오. 스물아홉 살이고, 주군을 모시고 있다. 우리는 미카와국 동쪽 가장자리에서 왔고, 도카이도를 따라 여행한 지 이제 일주일째이며, 무사시국으로 넘어와 아이가 지치는지 보아가며 하루에 대략 평균 12리✻씩, 때로는 그 이상씩 여행하고 있다. - <벌집과 꿀>, 폴 윤 지음 / 서제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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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 생을 살다가 또 다른 무언가가 되는 거야. 네 생각도 그렇지 않니? 너는 이 생을 살았지만, 내일이면 금방 또 다른 누군가가 돼서 또 다른 누군가와 살게 될 거잖아. 그런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되는 거야. 그걸 받아들이고 더 강해져야 돼. 지금 이 남자의 혼이 그늘 밑에서, 새로 피어난 이 색색깔의 꽃잎들 아래서, 비와 눈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가지들 아래서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 <벌집과 꿀>, 폴 윤 지음 / 서제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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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타오른다. 나는 그곳을 긁는다. 히로코는 자신의 요 위에 누운 채 고개를 뒤로 젖혀 창문을 쳐다보며, 유곽에 가고 싶지만 가고 싶지 않은 척한다. - <벌집과 꿀>, 폴 윤 지음 / 서제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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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고향 꿈을 꾸는 걸까? 어머니 꿈을? 아기 때 본 어머니가 기억날까? 기억이 난다면 어머니의 체취일까, 심장박동일까? 나는 유미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이번 주에 하게 된 여행이나 주군의 결정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 모든 세월. 시작되기도 전이었던 첫 번째 삶을 우리가 빼앗아버리는 바람에 대신 주어진 이 삶. 이 아이는 지금껏 나를 순순히 따라왔다. 언제나 그래왔기에. - <벌집과 꿀>, 폴 윤 지음 / 서제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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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놀랍게도 히로코의 표정이 변한다. 그의 마음속에 어떤 욕망이 있었든 그것이 달라진다. 들판을 스치는 새 그림자처럼 빠르게 모습을 바꾼다. 히로코는 두 눈을 감더니 울기 시작한다. 물 밖으로 들어올린 두 손에 고개를 파묻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하지만 그리 오래 울지는 않는다. 마음을 추스른 그는 저쪽 둑 위에 머리를 올려놓는다. 입을 살짝 벌리고, 얼굴은 하늘을 향한 채로. - <벌집과 꿀>, 폴 윤 지음 / 서제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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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이 아직 피지 않은 나무 곁에 서 있다. 겉옷을 벗고 무릎을 꿇는다. 수면에 서린 김을 밀어내며 왼손으로 물을 조금 떠낸다. 목욕하던 여자가 잠시 움직임을 멈춘다. 엄지손가락 없는 손이 잔 구실을 하기엔 얼마나 쓸모없는지 알아챈 모양이다. 바로 그 순간, 마치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듯 나비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 그림자에 닿을 듯 말 듯 닿지 않는 곳에서 날개를 치며. - <벌집과 꿀>, 폴 윤 지음 / 서제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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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즈음의 날들과 그날들을 이루는 모든 시간이 그들을 둘러싸고 고리 모양으로 굳어져버린 것 같았다. 해리는 무언가가 그 경계 밑을 파고들어 모습을 드러내주기를 계속 기다렸다.

- <벌집과 꿀>, 폴 윤 지음 / 서제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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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날 밤 침실에서 해리는 완전히 지친 채 옆으로 돌아누웠고, 곁에 누운 여자가 자신의 가족이라고 할 직접적인 범주 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또다시 놀랐다. 어쩌면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그들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이제 아이를 갖기엔 너무 늦은 걸까? - <벌집과 꿀>, 폴 윤 지음 / 서제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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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들이 돌아오고는 있는데 전부 한 걸음씩 떨어져 있는 것 같다고, 자기가 그 기억들에 닿으려고 애쓰는 걸 기억들이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다고 아이는 말했다. - <벌집과 꿀>, 폴 윤 지음 / 서제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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