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서른둘이다. 1986년의 이 가을날, 여전히 수도원에 기거하는 서른두 명. 수도원은 낯빛이 허옇게 질릴 정도로 아찔한 길이 끝나는 곳에 자리했다. 천 년이 흐르도록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길의 깎아지름도, 그 아찔함도. 서른두 개의 굳건한 마음과 ─ 허공을 굽어보는 곳에서 살려면 그래야만 한다 ─ 젊어서는 마찬가지로 굳건했던 서른두 개의 육신. 몇 시간 뒤면 그 수가 하나 줄 터이다.
-알라딘 eBook <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중에서 - P7
물론 나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한다. 나는 인간이 점점 더 빠르게, 점점 더 멀리 나는 걸 보았다. 나는 양차 대전도, 여러 민족이 침몰하는 것도 보았고 선셋 대로에서 오렌지도 따봤으니, 내게 뭔가 이야깃거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미안, 내가 배은망덕하게 굴고 있군. 내가 당신들 사이에서 숨어 지내겠다고 결심했을 때 당신들은 지닌 게 아무것도, 아니, 거의 없으면서도 나를 입혀 주고 먹여 줬지. 그런데 나는 너무 오랫동안 입을 닫고 살았다. 덧창을 내리게나, 햇빛에 눈이 부시군.
-알라딘 eBook <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중에서 - 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