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적이 드문 해변을 찾고 있었다. 모두가 더위를 피해 그늘로 물가로 도시 바깥으로 떠나는 계절에 한국에서 사람이 거의 없는 해변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딘가 모두의 시야를 벗어난 외딴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는데 그건 전적으로 나체로 바다에 뛰어들어보고 싶다는 나의 한가로운 소망 때문이었다.

-알라딘 eBook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지음) 중에서 - P7

그 이후로 나는 편집증 환자처럼 사람들에게서 나를 싫어하는 증거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나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노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것까지 신경쓰기에는 살아가는 일이 충분히 고됐기 때문이었다. 결국 모든 것에 무감해지기로 했다.

-알라딘 eBook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지음) 중에서 - P14

하지만 나는 지나가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게 늘 두려웠다. 말하는 순간 다른 것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고 나로서는 변화를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고 그 변화에 대해 누군가에게 다시 설명해야 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내가 다 겪은 것, 감당한 것, 견뎌낸 것에 대해서만 다른 사람과 공유할 용기가 났다.

-알라딘 eBook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지음) 중에서 - P21

눈을 감으면 이다음 해 여름의 풍경이 희미하게 일렁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미래에 할 일들을 계획하다보면 그 여름은 이미 다 지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란 그 여름을 추억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라딘 eBook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지음) 중에서 - P31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은 이제 모래바람에 파묻히고 없다. 물론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우리가 모아둔 방식으로는 더이상 없다. 우리는 커다란 비치 타월을 함께 뒤집어쓰고 해변을 떠난다. 천천히. 아직 오지 않은 날 쪽으로.

-알라딘 eBook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지음) 중에서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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