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 말을 들은 학생은 은재를 비롯한 서너 명뿐이었다. 스무 명은 엎드려 자고, 다섯 명은 이어폰을 꽂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곽은 아무 제재도 하지 않았으며 모멸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수업을 듣지 않는 게, 혹은 어떠한 학교교육에도 참여하지 않는 게 부와 권력만을 추종하고 소수자를 배척하며 환경을 파괴하는 불량배로 성장할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노동 착취에 시달리며 형벌 같은 생존을 이어가지만 어떤 비판 의식도 벼릴 수 없는 죄수가 된다는 뜻도 아니었다. 아무도 예단할 권리는 없었다. 학교에서 잘 배워야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믿음은, 제도교육에서 ‘모범적인’ 성취를 얻어서 삶의 기반을 마련한 자신 같은 교사들의 고정관념이었다.

-알라딘 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중에서 - P139

공교육이란 중산층의 아비투스를 재생산하고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국가 장치 아닌가. 바른 자세로 수업을 경청하라는 지도는 규율화된 신체를 양산해 사회적 유용성을 극대화하려는 ‘학교-감옥’의 통치술 아니냔 말이다. 곽은 일리치, 부르디외, 푸코 등을 떠올리며…… 어떤 지도도 하지 않았다. 엎드린 학생들의 뒤통수를 애정어린 눈으로 보았다. 학생들이 버리고 간 학습지의 빈칸에 숨은, 자신이 모르는 언어로 된 가지각색의 목소리들을 상상했다.

-알라딘 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중에서 - P139

곽은 은재와 함께 도서를 정리했다. 『도련님』은 우측 중단에, 『수레바퀴 아래서』는 중앙 상단에,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트롤리에 두고 『시민의 불복종』은 좌측 하단에, 『노인과 바다』는…… 자신의 손에서 은재의 손으로, 은재의 손에서 자신의 손으로 건네지는, 함부로 펼친 적 없는 새 책들의 반듯함.

-알라딘 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중에서 - P142

역시 달콤했다. 경박한 단맛이 아니라 깊이가 있고 구조가 있는, 하지만 묘사해보려고 하면 이미 여운만 남기고 사라져서 어쩐지 조금 외로워지는 달콤함. 사람을 전혀 파괴하지 않고도 패배시킬 수 있는 달콤함.

-알라딘 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중에서 - P143

조지 오웰의 『1984』를 차용해, 가상의 전체주의국가에서 붉은 도브를 든 로나가 해방의 노래를 퍼뜨린다는 통신사 광고는 지금 돌이켜보면 의미심장하다.

-알라딘 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중에서 - P151

수록곡인 〈Womb Bomb Tomb〉에서는 가자 지구를 "자궁과 무덤 사이에 지은 지상 최대의 감옥"으로 표현했다. 하마스의 테러는 지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유대인 팬들이 로나를 비난했다

-알라딘 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중에서 - P159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다. 어떤 급진주의자가 법률에 따라 창당하여 선거로 의회에 진입한다는 계획을 세울까.

-알라딘 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중에서 - P165

그러나 무대 또는 아스팔트에 있어야만, 허락된 자리에 머물러야만 보존되는 ‘순수함’에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알라딘 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중에서 - P1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