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각이 처음 떠오른 건 내가 이혼을 겪고 있는 동안이었다. 나는 마흔일곱 살에 과체중이었고, 외롭고 조용한 나날들을 채워줄 자식은 없었다. 나는 일찌감치 아기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독립적이고 현대적인 여성들 중 하나가 아니었다. 아기를 갖고 싶었지만 남편은 그럴 수 없었다. 정자부족증 때문이라고 그는 내게 말했다. 나는 인공수정을 시도하고 싶었지만 남편은 그 과정 전체가 너무치욕적인 일로 느껴진다며 거부했다. 나중에 우리의 이혼이 마무리되기 한 달 전 남편이 자신보다 열두 살 어린 새로운 여자와 강남의 한 유명 불임 클리닉에 이미 등록한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몇 주 동안 남편을 망치로 때려죽이는 꿈을 꾸곤 했다. 물론 내게는 그런 폭력을 휘두를 용기도 없었고 그럴 만한 성향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침 드라마에 등장하는 화난아줌마처럼 바람난 남편을 공격하기 위해 광화문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난입하는 상상을 하기는 했다. 드라마 속의 아줌마는 남편의 외도를 상세히 적은 전단지를 손에 쥐고 허공에서 열심히 흔들며 동료들 앞에서 남편이 지은 죄의 목록을 큰 소리로 읊는다. 그녀의 남편은 자신이 한 짓 때문에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런 판타지를 결코 실행에 옮긴 적이 없다. 그런 히스테릭한 일련의 행동에 굴복하는 것은 너무치욕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무척 짜릿했다.
-알라딘 eBook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중에서 - P13
나는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을 기다리며 여성 잡지를 휙휙 넘기다가 그 기사를 보게 되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죽기 전에 본인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부고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돕는 싱가포르 호스피스 의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의사는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많은 시한부 환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죽음보다는 죽음 이후, 그러니까 자신의 사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견뎌야 할 슬픔과 혼란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고 했다. 그의 새로운 프로그램은 놀라울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많은 환자들이 본인의 장례 준비에 참여하면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상태가 더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그것은 통제감과 안도감, 그리고 지구별에서의 짧은 여정으로부터 자신만의 의미를 이끌어낼 소중한 기회를 제공했다.
-알라딘 eBook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중에서 - P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