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실존주의 철학이라기보다는 기분에 가깝다고들 한다. 그러므로 실존주의의 기원은 19세기의 고뇌하는 소설가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고, 그 이전에 무한한 침묵의 공간을 공포로 느꼈던 블레이즈 파스칼에게로, 다시 그 이전에 영혼을 찾으려 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또 그 이전에는 하느님이 인간을 희롱하며 복종을 강요하는 놀이에 감히 의문을 제기했던 구약성서 전도서의 욥에게로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무언가 어떤 것에 불만이나 반감 혹은 소외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 누구에게서나 실존주의를 찾을 수 있다. - P11

아롱은 지금 친구들에게 거기서 접한 현상학phenomenology이라는 리듬감 있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철학에 관해 말하는 참이다.
이 단어는 영어로든 프랑스어로든 긴 단어지만 우아하게 균형이 잡혀그 자체로 약강 3보격의 운율(pheno-meno-logy)을 이룬다. - P12

현상학자들의 선도 사상가인 에드문트 후설이 외친 구호는 "사물 그 자체였다. 사물을 휘감고 있는 해석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말라는 것이고 특히 대상이 실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의미다. 즉,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에게 보이는 대로 그것을 바라보고 최대한 정확히 그것을 설명하라는 뜻이다. - P13

사르트르는 이 원칙을 세 마디의 슬로건으로 정의했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그가 내린 실존주의의 정의다. 이 원칙은 간결하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신이 세상에 던져졌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른 사물들이나 생물들에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방법으로 자신에 대한 정의(또는 본성, 또는 본질)를 계속해서 창조한다는 것이다.
타자가 나를 정의하는 어떤 꼬리표를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작업 중인 미완성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과 작용하면서 이를 통해 끊임없이 자아를 창조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인간으로서의 근본적인 조건이다. 사르트르에게 그것은 의식의 불이 켜진 첫 순간부터 죽음에 의해 꺼질 때까지 지속되는 인간의 조건이다. 나의 존재는 나의 자유 자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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