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 행성!" 그녀의 아버지가 플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말했다. "만 개의 전구!" 부엌에는 허용과 이완의 느낌, 심지어 행복의 기운까지 흘렀다.
-알라딘 eBook <거지 소녀>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중에서 - P43
로즈는 라디오를 그대로 켜둔 채 아파트 부엌 안을 돌아다니며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라디오 속 대화가 연출된 인터뷰나 연극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되어, 실제로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알라딘 eBook <거지 소녀>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중에서 - P43
부엌 창가에서 차가운 호수를 내다보며 로즈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들으면 좋아할 만한 사람은 플로였다. 최악의 의심이 멋들어지게 확인되었다는 뜻으로 그녀가세상에! 하고 말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 플로는 해트 네틀턴이 죽은 바로 그곳에 있고, 로즈는 어떻게 해서도 플로에게 가닿을 수 없었다.
-알라딘 eBook <거지 소녀>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중에서 - P45
이삼 년 전 로즈가 양로원에 입원시킨 이후로 플로는 말문을 닫았다. 플로는 스스로를 완전히 거두어들였고, 하루종일 교활하고 심술궂은 표정으로 칸막이를 두른 침대 한구석에 앉아서 누가 뭐라 해도 대답하지 않았다. 가끔씩 간호사를 깨물어 감정을 드러내는 때를 제외하고는.
-알라딘 eBook <거지 소녀>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중에서 - P46
로즈는 학교의 질서는 변경 불가능한 것이고 그곳의 규칙은 플로가 이해할 수 있는 그 어떤 규칙과도 다르며 그 야만성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믿었다. 정의와 청결은 제 인생의 미개한 단계에서 형성된 순진한 개념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처음으로 마음속에 절대로 말할 수 없는 일들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알라딘 eBook <거지 소녀>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중에서 - P49
특정한 단일 행위가 아니라 동일 선상에 있는 모든 행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망라해 세상 어디에서나 이루어지고 있는 그 행위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사람들의 허세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오락거리에도 플로는 항상 경악했다.
-알라딘 eBook <거지 소녀>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중에서 - P52
그들은 위안을 주는 텅 빔과 상대를 가리지 않는 환대라는 개념에서 만족을 얻기에 급급해 역겨움이 주는 최음적 자극을 고려하지 않으려 했다.
-알라딘 eBook <거지 소녀>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중에서 - P54
하지만 비참하지는 않았다. 변소에 갈 수 없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아무리 겁을 내고 소심하게 굴더라도, 그 어떤 충격과 불길한 예감에 시달린다 해도, 생존법을 배우는 것은 비참하게 사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기엔 너무 흥미롭다.
-알라딘 eBook <거지 소녀>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중에서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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