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라고 나는 말한다. 나는 그걸 창 쪽으로 들고 가 밝은 빛에서 바라본다. 멋질 수가 없는, 검은 가죽의 낡은 말굴레일 뿐이다. 내가 아는 바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거기에 말의 입에 물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 부분을 재갈이라고 부른다. 강철로 만들었다. 말의 머리 뒤로 고삐를 넘겨 목 부위에서 손가락에 낀다. 말에 탄 사람이 그 고삐를 이리저리 잡아당기면 말은 방향을 바꾼다. 간단하다. 재갈은 무겁고 차갑다. 이빨 사이에 이런 걸 차게 된다면 금방 많은 것을 알게 되리라. 재갈이 당겨지는 느낌이 들 때가 바로 그때라는 걸. 지금 어딘가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272
TV에 이제 대성당이 하나 나왔다. 그러더니 오랫동안 천천히 또다른 성당을 보여줬다. 마침내 화면은 버팀도리와 구름에 닿을 듯 치솟은 첨탑이 있는, 파리의 그 유명한 대성당으로 바뀌었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도시의 스카이라인 위로 우뚝 솟은 대성당의 전체적인 모습이 드러났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292
그때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대성당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감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생긴 건지 아시느냐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누가 대성당이라고 말하면 그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서 말하는지 개념이 잡히느냐는 거죠. 말하자면 대성당이 침례교회 건물과 어떻게 다른지 아시느냐는 거죠."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293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298
이처럼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자신의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비로소 타인과 세계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 목소리를 통해 ‘뭔가’를 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집이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304
그렇다면 가족, 술, 소설은 세 개의 다리처럼 레이먼드 카버의 삶을 지탱했어야 옳을 테지만, 처음부터 그 다리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붙어 있었고, 그의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306
그러므로 1983년 영국의 문예지 『그랜타』가 ‘더러운 리얼리즘dirty realism’*이라는 용어로 동시대 미국소설의 경향을 설명하면서 레이먼드 카버를 포함시킨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랜타』는 리처드 포드의 「록 스프링즈」, 바비 앤 메이슨의 「수박이 있는 정물화」, 토바이어스 울프의 『막사의 도둑』 등을 ‘더러운 리얼리즘’이라는 제목 아래 묶으면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칸막이 객실」을 포함시켰다. 「칸막이 객실」이 ‘더러운 리얼리즘’에 속한다면, 그건 아마도 실제로 일어난 일을 다루되 실제보다 가혹하게 씌어졌다는 점에서 그럴 것이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307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 왜소한 존재다. 그의 삶은 운이 좌우할 뿐이며 대개의 경우에는 하나의 사고가 또다른 사고로 이어진다. 그런데 카버는 인간이라고 하는 이 ‘small thing’의 중간에 ‘good’이라는 단어를 끼워넣는다. 그러자 이 ‘small thing’은 ‘something’, 즉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뭔가가 된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320
"이 사람아, 다 괜찮네." 그 맹인이 말했다. "난 좋아. 자네가 뭘 보든지 상관없어. 나는 항상 뭔가를 배우니까.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까. 오늘밤에도 내가 뭘 좀 배운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지.내겐 귀가 있으니까(인용자)." 그가 말했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321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It’s really something. 말하자면 『대성당』은 낙원에서 추방된 뒤 자신만의 공간에서 고립된 채 눈멀고 귀먹은 채로 살아가던 한 남자가 자신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는 충만한 ‘뭔가’를 보는 것으로 끝나는 단편집이다. 그게 과연 무엇인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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