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그의 아내인 이네즈는자기평가라고 표현했다—로이드는 집에서 나와 자기 거처로 들어갔다. 그 집은 삼층 건물의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집으로 두 개의 방과 욕실 하나로 이뤄져 있었다. 방에 들어가면 급하게 경사진 지붕의 안쪽이 나왔다. 방안을 서성거리면 필시 머리가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창밖을 내다보려면 꾸부정하게 몸을 숙여야 했으며 침대를 들락거릴 때마다 신경써야 했다. 그 집에는 열쇠가 두 개였다. 우선 건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열쇠가 있었다. 거기서 얼마간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층계참이 나왔다. 방문까지 가려면 층계를 하나 더 올라가야 했다. 다른 열쇠는 그 방문을 여는 데 필요했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50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식으로 아침을 해결한다고 하면 껄껄거리고 웃었을 사람이었다. 이제는 뭐 이상하게 여길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사실은 그날 저녁 침대에 누워 아침에 일어나서 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돌이켜보고서야 그 일도 생각났다. 처음에는 기억할 만한 일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샴페인과 함께 도넛을 먹은 일이 떠올랐다. 예전의 그였다면 살짝 미친 게 아니냐며 친구에게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거든 저거든 그게 뭐가 문제냐는 생각이 들었다. 샴페인과 도넛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51

그녀가 찾아온 날, 그는 파자마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주먹으로 오른쪽 머리를 치고 있었다. 한 대 더 치려고 하는 순간, 층계참에서 목소리들이 들렸다. 그는 아내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멀리서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그는 그게 이네즈의 목소리이며 이번 방문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주먹으로 머리에 한번 더 충격을 가한 뒤 벌떡 일어섰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52

그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귀지가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그 과정에 균형감각을, 몸의 평형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지금까지 한 시간 동안이나 때때로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며, 될 것 같지 않아도 귀를 어떻게 해보려고 애쓰며 그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52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머릿속이 액체로 꽉 차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옛날에 시립수영장의 바닥까지 헤엄쳐 들어갔다가 귀에 물을 가득 채운 채 위로 솟구쳤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귀의 물을 빼는 일은 간단했다. 폐 속 가득히 공기를 들이마시고 입을 꾹 다문 채, 코를 꽉 쥐기만 하면 됐다. 그다음에 양볼 가득 숨을 내뱉어 머리 쪽으로 공기를 밀어넣는 것이다. 그러면 귀가 뻥 뚫리고 몇 초 동안 머리에서 흘러내린 물이 어깨로 뚝뚝 떨어질 때의 상쾌한 느낌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수영장 바깥으로 몸을 빼냈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55

"어쨌거나뭔가 하긴 해야지. 일단 이것부터 해보는 거야. 만약 그래도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그게 인생이야. 그렇지 않아?"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56

"신경써줘." 그가 말했다. "부탁이야."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58

자기 남편한테도 그런 일이 있었대. 한번은 남편의 귀에서 귀지가 나왔는데, 그게 엄청나게 큰, 무슨 마개 같았다는 거야. 그게 귀지, 정확하게 그거였다는 거지.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61

이네즈는 코로 숨을 쉬고 있었다. 로이드는 그녀의 숨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집밖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와 집 뒤쪽, 부엌 창문 아래 전지가위가슥삭거리는 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62

밤에 너댓 시간 자는 게, 어쨌든 그에게 필요한 전부였다. 그 정도는 어떻게든 할 수 있으리라.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나쁜 일도 일어날 수 있으니. 어떤 점에서 그건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가 감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이불을 걷어젖히고 일어섰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65

그는 자신이 잠잘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평생 감수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어쩐지 이 모든 일은 그에게 도넛과 샴페인 같은 걸 연상시켰다. 잘 생각해보면, 놀랄 만한 일이 전혀 아니었다. 그는 샴페인을 조금 들이켰다. 그런데 맛이 이상했다. 그는 혀로 입술을 훔치고 나서 소매로 입을 닦았다. 눈을 돌린 그는 샴페인 표면에 형성된 오일 막을 볼 수 있었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66

J. P.와 나는 프랭크 마틴이 운영하는 술 끊기 시설의 앞 포치에 있다. 프랭크 마틴의 시설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J. P.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술꾼이다. 하지만 그는 굴뚝청소부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 처음 왔고, 지금 겁을 내고 있다. 나는 전에 한 번 여기 온 적이 있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나는 다시 온 거다. J. P.의 원래 이름은 조 페니지만, 그는 자신을 J. P.로 불러달라고 내게 말한다. 그는 서른 살 정도다. 나보다 젊다. 많이 젊은 건 아니고 조금 젊다. 그는 내게 어떻게 그런 분야의 일에 뛰어들었는지 말하고 있는 중인데, 말하면서 두 손을 사용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의 두 손은 떨린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에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거든." 그는 말한다. 손 떠는 일 말이다. 나는 알 만하다고 그에게 말한다. 나는 떨림은 잦아들 거라고 그에게 말한다. 그게 그렇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69

그래서 나는 어디서건 내 어깨가 들썩거릴 때면 숨을 고르며 기다린다. 입에는 누군가의 손가락을 넣은 채로 바닥에 누워 허공을 올려다보며 다시 깨어나는 순간을.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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