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나는 그 사진이 남양南洋군도에서 왔다고 생각했다. 카우치 위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세상을 향해 다리를 벌리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담긴, 가장자리가 불에 그슬린 사진이었다. 불길의 자취는 사진 아래쪽에 반원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검은 그 반원의 양옆으로는 ‘Pier……s 1895)’라는 글자가 남아 있었다.-알라딘 eBook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5
여기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이고 비행기가 이륙하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다. 그러니 먼저 그 사진을 가지러 고향집으로 내려가던 그해 가을에 대해 말하려 한다. 모든 일들은 그 입체 누드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으니까.-알라딘 eBook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6
구토 끝에 바라본 지평선에는 애잔한 슬픔 같은 게 맺혀 있었다. 목을 길게 빼고 서 있는 나무 전봇대며 거기 삐딱하게 매달린 가로등 따위가 모두 지난날의 한순간을 반성하는 것 같았다. 기름 냄새만 맡지 않았더라도.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알라딘 eBook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