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구성원들의 의식 형성에 관한 내 생각에 어쭙잖게 내 삶에 대한 내 생각의 조각들을 덧붙인 것은 나름대로 편한 비루함보다는 불편한 자유 쪽에 서려고 했던 삶의 궤적을 통해 소수에겐 그래도 탄식보다는 의지가 어울린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 <생각의 좌표>, 홍세화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8d9844b0d4d50 - P6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사람이 ‘생각하는 동물’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런데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바’들이 어떻게 내 것이 되었는지 묻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생각의 좌표>, 홍세화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8d9844b0d4d50 - P10
"사람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에 따르면, 사람은 이성적 동물, 합리적 동물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 <생각의 좌표>, 홍세화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8d9844b0d4d50 - P11
기존 생각을 수정하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대부분은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는 용기만 갖고 있다. - <생각의 좌표>, 홍세화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8d9844b0d4d50 - P12
오히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그 좋은 머리를 기존의 생각을 수정하기보다 기존의 생각을 계속 고집하기 위한 합리화의 도구로 쓴다. - <생각의 좌표>, 홍세화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8d9844b0d4d50 - P12
18세기 프랑스의 교육철학자 콩도르세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과 ‘믿는 사람’으로 나누었다. 이는 다시 말해 ‘근대적 인간’과 ‘중세적 인간’으로 나눈 것인데, 이를 다시 내 식대로 적용해 보면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를 물을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왜냐하면,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라고 물을 때 자기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그나마 열리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자기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없는,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믿는’ 사람으로 남기 때문이다. - <생각의 좌표>, 홍세화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8d9844b0d4d50 - P14
암이 아주 나쁜 고질병인 이유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병인데도 자각 증세가 너무 늦게 찾아온다는 점에 있다. - <생각의 좌표>, 홍세화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8d9844b0d4d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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