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공화국은 모든 아일랜드 남성과 여성으로부터 충성을 받을권리가 있고 이에 이를 요구한다. 공화국은 모든 국민에게 종교적·시민적 자유, 평등한 권리와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며, 국가 전체와 모든부문의 행복과 번영을 추구하고 모든 아동을 똑같이 소중히 여기겠다는 결의를 천명한다."
「아일랜드 공화국 선언문(1916)에서 발췌 - P7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흑맥주처럼 검은 배로Barrow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 P11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멀리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시내에서, 시 외곽에서 운 없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 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고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창고보다도 추운 집에서 지내며외투를 입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들은 매달 첫째 금요일에 아동수당을 받으려고 장바구니를 들고 우체국에서줄을 섰다. 시골로 가면 젖을 짜달라고 우는 젖소들이 있었다. 젖소를 돌보던 사람들이 갑자기 다 때려치우고 배를 타고 영국으로 떠나버린 탓이었다. 한번은 세인트멀린스에사는 남자가 차를 얻어 타고 시내로 요금을 내러 왔는데,
그 사람 말이 지프를 팔아야 했다고, 빚을 생각하면, 은행에서 압류가 들어올 걸 생각하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어느 이른 아침 펄롱은 사제관 뒤쪽에서 어린 남자아이가 고양이 밥그릇에 담긴 우유를 마시는 걸 봤다. - P23

여자들은 펄롱을 보자 불에 데기라도 한 듯 놀랐다. 그저 카멜 수녀가어디 있는지 물어보러 왔을 뿐인데? 그들 중에 신발을 신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검은 양말에 끔찍한 회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한 아이는 눈에 흉측한 다래끼가 났고 또다른 아이는 머리카락이 누군가 눈먼 사람이 커다란 가위로 벤 것처럼 엉망으로 깎여 있었다. - P51

이 위는 이렇게 고요한데 왜 평화로운 느낌이 들지 않는걸까?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고 펄롱은 검게 반짝이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강 표면에 불 켜진 마을이 똑같은 모습으로 반사되었다.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보면 훨씬 좋아 보이는게 참 많았다. 펄롱은 마을의 모습과 물에 비친 그림자 중에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 P67

그날 미사는 길게 느껴졌다. 펄롱은 딱히 열심히 참여하지 않고 멍하니 한 귀로 들으며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으로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보았다. 강론 동안에는 눈으로 십자가의 길」성화를 훑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쓰러지고, 성모와 예루살렘의 여인들을 만나고, 두 번 넘어지고 옷이 벗겨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무덤에 묻히는 그림들 축성이 끝나고 앞으로 나가 영성체를 받아야 할때가 되었으나 펄롱은 벽에 붙어 서서 고집스럽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P89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거기 일에 관해 말할 때는조심하는 편이 좋다는 거 알지? 적을 가까이 두라고들 하지. 사나운 개를 곁에 두면 순한 개가 물지 않는다고. 잘 알겠지만." - P105

어떤 녀석들은말쑥하게 보였다. 날개를 접고 성큼성큼 돌아다니면서 땅바닥과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뒷짐을 지고 시내를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젊은 보좌신부와 닮아 보였다. - P61

펄롱은 사냥감을 노리며 배회하는 야행성 동물이 된 듯한기분이었다. 무언가 흥분에 가까운 기운이 피를 타고 흘렀다. 모퉁이를 돌자 검은 고양이가 죽은 까마귀를 뜯으며 입술을 핥고 있었다. 고양이는 펄롱을 보고 멈칫하더니 후다닥 울타리 속으로 달아났다. - P116

펄롱은 어렵지 않게 아이를 데리고 진입로를 따라 나와언덕을 내려가 부잣집들을 지나 다리를 향해 갔다. 강을 건널 때 검게 흘러가는 흑맥주처럼 짙은 물에 다시 시선이갔다. 배로강이 자기가 갈 길을 안다는 것, 너무나 쉽게 자기 고집대로 흘러 드넓은 바다로 자유롭게 간다는 사실이부럽기도 했다. 외투가 없어서 추위가 더 선뜩했다. 펄롱은자기보호 본능과 용기가 서로 싸우는 걸 느꼈고 다시 한번아이를 사제관으로 데려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펄롱은 이미 여러 차례 머릿속으로 그곳에 가서 신부님을만나는 상상을 해봤고 그들도 이미 다 안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시즈 케호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다 한통속이야. - P117

펄롱은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빈주먹만도 못했다고 말할사람도 있을 것이다. 펄롱의 엄마는 열여섯 살 때 미시즈윌슨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임신을 했다. 미시즈 윌슨은 남편을 먼저 보내고 시내에서 몇 마일 떨어진큰 집에 혼자 사는 개신교도였다. 펄롱 엄마가 곤란한 지경에 빠졌을 때, 가족들은 외면하고 등을 돌렸지만 미시즈 윌슨은 엄마를 해고하지 않고 계속 그 집에 지내며 일할 수있게 해줬다. - P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