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1세는 구교도 국가인 프랑스의 공주 앙리에타 마리와 결혼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왕권신수설(왕의 권한은 신이 부여했고 절대적이라는 주장)을 신봉한 그는 왕실의 상품 독점권을 고집했고 돈을 받고 관직을 파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1628년 소집된 의회는 왕의 자의적인 권한 행사를 제한하는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s을 제시했다.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과세, 민가에서 군인의 숙영, 재판
없는 구금, 계엄령 금지가 주요 내용이다. 권리청원은 1215년 대헌장이 규정한 과세권을 재확인하고 당시 상황에 맞는 다른 권리도 추가했다. 귀족이 모인 상원도 의회의 권한을 주장해 상하 양원 모두 왕에게 승인을 요구했다. 의회의 압력 때문에 왕은 임시방편으로 이 청원을 받아들였으나 계속해서 비판자들을 멋대로 체포했다. 의회가 이미 거부했던 세금도 거두었다. 원래 선박세ship money는 전쟁 때 항구도시의 배를 국가가 징발하거나 징발 대신 세금을 납부하게 하는 제도다.
오직 국가 비상시에만 의회의 동의 없이 징수할 수 있는 왕의 특권으로 인정됐다. 그러나 왕은 이 세금을 내륙에 있는 도시까지 의회의 동의 없이 부과했다. 곤궁해진 왕실 재정을 메꾸기 위해서였다. -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안병억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296063b81e054590 - P165
잉글랜드뿐 아니라 장로교가 강했던 스코틀랜드에서도 반발이 커졌다. 1637년 스코틀랜드에서 왕의 종교 강요에 반발하는 봉기가 일어난 후 전쟁 발발 위협이 커졌다. 전쟁 준비로 돈이 필요해진 왕은 마지못해 1640년 의회를 소집했다. 11년 만에 소집된 의회는 왕이 권리청원을 지키지 않았음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대 스코틀랜드 정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왕은 3주 만에
의회를 해산하고 외교정책이 자신의 특권이라며 반대파 지도자 5명을 체포하려 했다. 결국 이게 도화선이 되어 1642년 내전이 일어났다. 바로 잉글랜드 내전이다. -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안병억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296063b81e054590 - P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