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주인은 쾌활하지 않았다. 예의상 주고받는 가벼운 대화도 없이 둘은 최소한의 말만, 필요한 정보만 교환했을 뿐이다. 그 사람 때문에 불편했고, 그녀는 그게 안 좋았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99

그녀는 애엄마에 서른세 살이었고 그녀가 보기에 모든 사람들, 특히 그녀의 아버지뻘 정도로 늙은 빵집 주인의 나이라면 이런 케이크와 생일파티의 특별한 시기를 지나온 자식들이 있을 게 분명할 것 같았다. 자신들 사이에는 그런 게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그녀에게 퉁명했다. 무례한 건 아니고, 다만 퉁명했다. 그녀는 그와 친해지려고 애쓰는 일을 포기했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99

앞을 살피지 않은 채, 걸어가던 아이는 교차로에서 인도 연석에 발을 헛디뎠고 곧바로 차에 치여 쓰러졌다. 옆으로 넘어지면서 아이의 얼굴은 배수로에 처박혔고 다리는 차도 쪽으로 나와 있었다. 두 눈은 이미 감겼으나 다리만은 마치 기어나오겠다는 듯이 앞뒤로 까딱거렸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00

지금까지 그의 삶은 순탄했고 그로서는 만족스러웠다. 대학, 결혼, 경영학 고급과정 학위를 받기 위해 다시 다닌 일 년의 대학생활, 투자회사의 하위 동업자. 아버지 되기. 그는 행복했고,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 그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고, 형제자매들은 다들 자리를 잡았으며, 대학 친구들은 모두 사회에 나가 나름의 위치를 차지했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02

"여기 가져가지 않은 케이크 하나가 있어요." 수화기 저편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씀이죠?" 하워드가 물었다.
"케이크 말이오." 그 목소리가 말했다. "십육 달러짜리 케이크."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03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제 그들은 서로의 가슴속까지도 느끼는 듯했다. 마치 걱정을 많이 하다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온몸이 투명해진 사람들처럼.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16

그녀는 자신과 같은 종류의 기다림이라는 상황에 처한 이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녀도 두려웠고, 그들도 두려웠다. 다들 그런 공통점이 있었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22

"스코티." 남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스코티 얘기요, 그래요. 스코티랑 관계가 있죠, 그 문제는. 스코티 일은 잊어버리셨소?" 남자가 말했다. 그러더니 전화를 끊었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23

아이는 두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아이는 다시 두 눈을 떴다. 일 분 정도 앞쪽만 바라보던 눈동자는 천천히 움직이다 하워드와 앤을 향해서 잠시 멈췄다. 그러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29

아이는 그들을 바라봤지만, 알아본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러더니 입이 벌어지는가 싶다가 두 눈은 굳게 감겼고, 폐 속에 더이상 숨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아이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은 편안해졌다. 아이의 입술이 벌어지면서 마지막 숨이 목구멍을 지나 앙다문 이빨 사이로 천천히 빠져나갔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30

의사들은 이를 히든 오클루전*이라고 불렀는데, 백만 명당 한 명꼴로 발생하는 특이증상이라고 했다. 귀신같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즉시 수술을 했더라면 아이를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었다. 어쨌든 그들이 뭘 찾을 수 있었겠는가? 검사에도, 엑스레이에도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 hidden occlusion. 눈에 보이지 않는 혈관폐색 증상을 뜻한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30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그가 말했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43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라딘 eBoo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중에서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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