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늘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다. 뭘 요구하거나 하는 의미망 레이더에 걸러지는 말을 하는 존재가 못 된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동네 사람들 거개가 아버지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그리스 조각 같은 미남에 꿈꾸는 눈동자, 천상의 목소리, 하모니카 솜씨, 고운 말씨, 법 없이도 살 사람, 희소한 영어 실력… 뭐 이런 찬탄의 대상이었던가. 그러나 엄마는 이 모든 요소를 끌어모아 그냥 딱 한마디로 ‘식충’이라고 했다. - P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