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어떻게 해야 돼?"
중앙관제로 온통 캄캄한 연길시의 골목을 더듬어 허름한 병실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상봉의 감격을 내비치는 일말의 제스처도 없이 내게 물었다.
‘엄마! 이제는 더 이상 엄마가 어떻게 안 하셔도 되는 것 같아 나는 속으로 외쳤다. 생의 고비마다 엄마는 얼마나 여러 번 스스로에게 저 말을 되뇌었을까? 참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눈물이 솟고 말았다. 엄마의 눈자위가 비현실적일 정도로 샛노래서, 심장이 철렁해졌던 탓이다. 기괴한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진노란색 눈을 현실에선 처음 보았다. 엄마는 역시나 나무라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엄마가 하고픈 말을 알아들었다. ‘지금 누가 누구 앞에서 우는거냐고! 쯧!‘ - P11

"딱 알겠구만요."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 엄마가 얼마 전 동생이 방문했을 땐
‘다 필요 없다. 공항에서 제일 예쁜 여자 찾으면 그게 바로 우리 작은딸‘이라 했다는 것이고 이번엔 ‘바람 불면 딱 날아가게 생긴 쪼끄만 여자가 나올 건데, 걔가 속은 태평양보다 넓은 우리 큰딸‘이라고 했단다. 경만은 날 보자 한숨 돌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담당 의사를 먼저 만났다. - P12

1958년생인 내 기억에 의하면, 서울시 용산구 도원동 꼭대기,
실향민들이 모여 살던 목조건물의 우리 집 ‘다다미방 한 칸에 아버지, 엄마, 큰 외삼촌(가족은 북에 두고 혼자 월남했다가 상봉했다는데, 어찌된 셈인지 우리 집에 얹혀살았다), 오빠, 나, 나중엔 동생까지 여섯 식구가 살았는데, 부양을 감당하는 건 늘 엄마였다. 엄마는 매일 나가서 ‘돌아다니는 장사‘를 했다. 엄마는 그것을 ‘선장사‘라고도 불렀는데, 늘 ‘앉은장사‘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난 밑천이라고는 없어서 뼈로 살았다‘ 했다. 두부장수아줌마, 또순이, 일수놀이 아줌마, 불여우, 함경도 아줌마, 문수엄마, 무서운 아줌마…… 이런 것들이 엄마를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엄마의 무용담이 꽤 있었는데, 내 생각에 엄마가 앞서는 점은 체력적 파워라기보다는 뭐랄까, ‘얄짤없음‘이다. 소위 ‘깡다구‘라 하던가. 머뭇거리지 않는 행동력. - P18

뻔하다면 뻔한 할리우드 영화 「더 록The Rock」을 보면서, 나는 이 장면에서 리듬(어떤 몰입을 차단하는 잠금장치)을 놓쳐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 유치한 슬로모션 남발인데. 어쩌면 좋아, 흑흑. 아직 영화 초반인데 걸려들었군, 꺼이꺼이.
약자끼리 미워하거나 죽이는 장면은 내게 아킬레스건이다.
1999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실미도 특수부대‘ 편 작가 일을 맡았을 때, 당시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기록들을 보며 곡예를 해야 했고, 10. 26 사태 때 박선호 의전과장이 아끼던 후배를 향해 "우리, 같이 살자" 하는 대목에서도 호흡이 가빠져 죽는 줄 알았다. - P21

나의 엄마는 날 미워하는 병에 걸리셨다. 엄마가 날 미워한다는 사실을 내가 행여 의심하거나 그럴 리 없다고 착각이라도 할까봐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나는 니가 미워 죽겠다. 어떡하면 좋으니."
"내가 어떻게 하길 바래?" - P21

아, 생각났다. 나의 ‘슬픔‘이라 하는 게 적당하겠다. 엄마의 절망, 엄마의 붉은 울화, 나의 슬픔,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 시간도 증발해버리는 새하얀 공허, 그리고 슬픔……
"애비 닮은 년"
아마도 이것이 폭언 중의 대표였겠다. 쌍년…… 이런 건 너무 단순하니 빼도록 하자.
"미물微物!" "미물단지 같은 년"
"약 맞은 파리 같은 년."—오빠는 이 말이 나를 기막히게 표현하는 단어라며 감탄하곤 했다.
"써먹을 데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구나." - P26

나는 덫에 걸렸다. 나는 어떤 나를 버리고 투명인간이 되었다.
나는 어떤 종류의 통로를 차단하고 어둠 속의 댄서가 되었다. - P26

십대에 썼던 메모가 남아 있다.

바람이여 난 운다
눈물 방울방울 당신이 씻어갈 때까지

그러나 어쩌면 당신은
늘 나의 바깥으로만 분다.

그러면 나도 춤을 춘다.
빙글빙글 빙글빙글

날 찾지 말아라, 문영아
나는 보다 멀리서 손수건을 흔들고 있다.
물론 곧 돌아오지.
웃음 활짝. - P27

유서

내 마음과
세상의 마음이 너무 달라요.

속상해서 못 살겠어요.
안녕. - P29

이때였던 것 같다. 나는 그냥 ‘어떤 나‘를 포기했다. 수많은 나중에 아마도 가장 중요한 어떤 나를 지하 수십 길 감옥 속에 유폐시켰다. 나는 나를 버렸다. 난 투명인간이 되었다. 허수아비로 살기로 했던가.
아마도 어떤 詩와는 반대로, 알맹이는 가라. 쭉정이만 남고.
뭐 이런?
맞나. 어떻게 말해야 정확할지 모르겠다.
알맹이는 다 숨어라, 쭉정이만 남고 다 튀어라. 이런 묘수를 부렸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채로 육십 평생을 살아온 것 같다. - P39

나는 학교에서 ‘글 잘 쓰는 축에 속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공부를 썩 잘하지도 못했고 그냥 별 볼 일 없는 아이였는데, 글짓기 대회에 나갈 학교 대표 자리에 한 자리가 빈다 했을 때 아마 ‘정당하게 학교와 집을 벗어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따라 나섰을 것이다. 그러고는 대회장에 가자마자 주눅이 들었다.
당시 노란 교복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던 리라국민학교, 재동, 추계……뭐 이런 학교 애들의 잘난 분위기에 압도되었고 막막해졌다. 더구나 4, 5, 6학년 언니들이 주 경연자이고, 나와 같은 몇몇 3학년들은 그냥 ‘꼽사리 끼워준 막내‘인 분위기였다. 주어진 제목 중 하나를 골라 시와 산문 가운데 선택해 글을 쓰고, 시간안에 제출하라고 했다. - P53

글을 잘 못 쓴다는 자각과
글을 좀더 잘 쓰면 좋을 텐데 하는 부채감이 계속 이어져온것 같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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