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번역은 두 언어의 피상적 이해를 뛰어넘어 출발어의 문학 전통과 도착어의 문학 전통을 잘 파악한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다량의 텍스트를 빨리 소화하고 이른바 그에 대한 ‘썰’을 풀고 영업할 수준이어야 한다. 번역 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라야 하고(책 한 권을 번역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는가) 의사소통이 잘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성격이 급하거나 까칠하거나 타인을 보듬을 줄 모르는 사람이 문학번역과 연결되는 수많은 관계자들(작가, 국내 에이전트, 해외 에이전트, 국내 출판사 및 해외 출판사의 여러 부서, 다양한 해외 독자, 타 언어 번역가 등)과 일한다면 자신은 물론 관계자들에게도 너무 고된 일이 되고 만다. 문학번역가로 일한다면 사람들과의 협업이 필수이므로 혼자 일하고 싶어서, 사람이 싫어서 번역을 선택했다면 속히 다른 일을 찾기를 권한다.
-알라딘 eBook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안톤 허 지음) 중에서 - P37
냉정하게 분석해 보자. 일 년에 등단하는 한국 작가의 수는 일 년에 한영 번역서를 내는 번역가의 수보다 많다(그것도 배 이상이나). 또한 현재 영어권을 통틀어 일 년에 한국문학 작품이 열 권만 되어도 많이 출판된 것이라고도 했다. 그중 세 권이 안톤 허의 번역서, 그중 세 권이 자넷 홍(하성란의 《푸른수염의 첫 번째 아내》 등을 영역했다)의 번역서라고 치면 그해 여섯 명의 번역가만 책을 낸 셈이다.
-알라딘 eBook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안톤 허 지음) 중에서 - P37
번역 수업 졸업부터 단행본 출판까지의 이른바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이라고도 부르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추세라곤 해도 그들로서는 수련의 시간이 길기만 한 현실이다. 또한 출판이 가능한 수준으로 자신만의 문체를 정립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더 걸릴 수 있다.
-알라딘 eBook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안톤 허 지음) 중에서 - P38
이 땅의 모든 번역가 지망생에게 고하노라. 그런 말을 믿지 말 것. 당신 같은 번역가는 오로지 당신만이 유일하다. 당신은 대체 가능하지도 않고, 대체된다 한들 그런 악조건에서 좋은 번역이 나올 리 만무하니 그 자리를 아쉬워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 아니, 오히려 클라이언트는 얼마든 대체 가능하며 번역 일은 도처에 널려 있다.
-알라딘 eBook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안톤 허 지음) 중에서 - P41
누누이 말하지만 번역 일은 널린 반면 적정 수준의 번역을 데드라인 내에 송고할 수 있는 번역가는 생각만큼 흔하지 않다.
-알라딘 eBook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안톤 허 지음) 중에서 - P41
나의 경우 공식적으로 문학번역 수업을 받고 첫 단행본 번역서를 펴내는 데 약 9년이 걸렸다. 이 기간이 나의 ‘죽음의 계곡’이었고, 번역가 지망생들 대부분이 문학번역가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기도 하다.
-알라딘 eBook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안톤 허 지음) 중에서 - P45
번역문학 전문 웹진 〈애심토트 저널Asymptote Journal〉에서는 번역 대회를 개최하는데 단행본 두 권을 출판한 경우만 제대로 데뷔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심사 규정이 있다. 책 한 권을 번역 출판한 후 다시는 책을 내지 않는 번역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애심토트 저널〉의 규정에 따르면 나 또한 2018년 11월 30일, 두 번째 번역서를 내고 나서야 ‘문학번역가 지망생’에서 ‘문학번역가’로 발돋움했다.
-알라딘 eBook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안톤 허 지음) 중에서 - P46
죽음의 계곡은 번역가가 세상 물정을 배우는 곳이며 자신이 정말로 문학번역이라는 일에 스스로의 운명을 맡기고 싶은지 고민해 보는 기간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말해 죽음의 계곡에서는 먹고살기 위해 돈을 모으지만 경험과 소재를 모으기도 한다.
-알라딘 eBook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안톤 허 지음) 중에서 - P47
즉 달리 은유하면 죽음의 계곡은 일종의 ‘영혼의 어두운 밤’이기도 하다. 이 어두운 밤이 지나면 언어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진리를 발견한다. 그 진리는 자신이 문학번역이 아닌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깨달음일 수도 있다.
-알라딘 eBook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안톤 허 지음) 중에서 - P48
하지만 문학번역에 몸을 담그기 전 자신의 언어 조합에 얼마만큼 펀딩이 가능할지 가늠하고, 여타 수입으로 번역 일 수입 외에도 소득을 벌충할 각오를 해야 하며, 죽음의 계곡에서 나오기까지 많은 네트워킹과 실력 쌓기의 시간이 기다린다는 사실도 인지해야 한다.
-알라딘 eBook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안톤 허 지음) 중에서 - P48
마지막으로 그 길이 당신을 어디로 인도하든,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무엇을 얻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책을 내고 안 내고는 중요하지 않다. 난 문학 밖에서 했던 일들을 아주 후회하지는 않는다. 여러분에게도 당부하고 싶다. 계곡에서의 시간을 즐기길. 이것도 다 모험일 터이니.
-Words Without Borders, 2018. 11. 12.
-알라딘 eBook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안톤 허 지음) 중에서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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