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로서 그의 경력은 1920년대 독일에서 양자 물리를 배우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1930년대에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분교를 미국 양자 물리학 연구의 중심지로 만들면서 그는 미국에서의 대공황과 유럽에서의 파시즘의 발호에 대한 대응으로 (대부분 공산당원이거나 공산주의 동조자인) 친구들과 함께 경제적, 인종적 정의를 이루기 위한 투쟁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이 당시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다. 10년 후 그러한 경력이 그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에 손쉽게 이용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소중하게여기는 민주주의 원칙들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우며 소중하게 지켜야하는지를 보여 준다. - P14

그는 전시 조국을 위해 자연으로부터 태양의 거대한 불꽃을 얻어내려는 노력을 진두지휘했던 "원자 폭탄의 아버지"이자 미국의 프로메테우스였다. 나중에 그는 원자력의 잠재적 이로움과 위험성에 대해 현명하게 발언했고, 학계 전략가들이 옹호했고 군부가 받아들인 핵 전쟁 제안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우리는 항상 윤리를 인류 문명의 가장 필수 요소로 여겨 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모든 인류를 죽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게임 이론의 논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문명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 P14

오펜하이머의 경고는 무시되었고, 궁극적으로 그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반항적인 그리스의 신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류에게 주었듯이, 오펜하이머는 우리에게 핵이라는 불을 선사해 주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통제하려고 했을 때, 그가 그것의 끔찍한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려고 했을 때, 권력자들은 제우스처럼 분노에 차서 그에게 벌을 내렸다.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의 청문회 위원회에서 반대 의견을 피력했던 워드 에번스(Ward Evans)가 썼듯이, 오펜하이머에게서 비밀 취급 인가를 빼앗은 것은 "이 나라의 오명"이 아닐 수 없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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