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죽으면 어디에 묻혀 있는지가 중요할까? 더러운 구정물 웅덩이든, 높은 언덕 꼭대기의 대리석 탑이든 그게 중요한 문제일까? 당신이 죽어 깊은 잠에 들게 되었을 때, 그러한 일에는 신경쓰지 않게 된다. 기름과 물은 당신에게 있어 바람이나 공기와 같다. 죽어버린 방식이나 쓰러진 곳의 비천함에는 신경쓰지 않고 당신은 깊은 잠에 들게 되는 것뿐이다.
-알라딘 eBook <빅 슬립 (필립 말로 시리즈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중에서 - P5
10월 중순 오전 열한시경이었다. 햇빛은 비치지 않았고 선명하게 드러난 산기슭에는 거센 비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진한 청색 와이셔츠와 넥타이에 담청색 양복을 입고 장식용 손수건을 꽂았으며 검은 단화와 짙푸른 실로 수놓은 검정색 모직 양말을 신고 있었다. 단정하고 깨끗하고 말끔히 면도도 한 데다 머리도 맑았지만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립탐정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사백만 달러짜리를 방문하러 가는 길이었다.
-알라딘 eBook <빅 슬립 (필립 말로 시리즈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중에서 - P6
스무 살 가량 되어 보이는 여자로 작고 섬세한 체격이었지만 튼튼해보였다. 연푸른빛 바지가 잘 어울렸다. 여자는 마치 떠다니는 것처럼 걸었다. 멋진 황갈색 곱슬머리는 요새 유행하고 있는, 머리 끝을 안으로 마는 페이지보이 스타일보다 훨씬 짧게 손질되어 있었다. 눈은 석판과 같은 짙은 회색으로, 나를 바라볼 때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녀가 내게 다가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자 신선한 오렌지 껍질 속처럼 하얗고 도자기처럼 광택이 나며 육식동물을 닮은 작고 뾰족한 이가 드러났다. 이는 얇고 지나치게 팽팽한 입술 속에서 반짝였다. 여자의 얼굴엔 혈색이라고는 없었고 지나치게 건강해 보이지도 않았다.
-알라딘 eBook <빅 슬립 (필립 말로 시리즈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중에서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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