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충격을 받은 듯 내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했다. 나는 두 사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안에서 느꼈다. 네티를 느끼고 신부를 느꼈다. 내가 그 가슴이고 내가 그 손이었다. 나는 네티의 쾌락이고 고통이었다. 나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 약한 떨림은 후들거림이 되고 곧 사시나무 같은 세찬 떨림이 되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10

자전거를 타면 기분만큼은 더 자유롭고 용감해졌다.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똑똑한 탐험가가 된 기분이었다. 거리는 내가 익히 아는, 내 것이었다―거리는 인간들의 상호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 사람들의 지혜가 있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나만의 세계를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공원은 무엇이었을까?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의 그림이 내가 느끼는 공원의 이미지를 그대로 나타내준다. 나는 원초적 자연이 살아 있는 정글을 모방하여 신중하게 조성한 도시의 풍경에서 야생적이고 원초적인 세계를 엿보았다. 그곳에 있는 나는 그 세계의 반대였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수다 떠는 것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스스로를 상상할 수 없던 어린 유대인 소녀일 뿐이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12

도시 소녀인 우리도 따뜻한 봄날 오후가 되면 평소보다 자전거 속도를 내어 멀리까지 내달리곤 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바람과 자극은 우리 안에서 막 꽃피기 시작한 그 아릿한 감각과도 닮아 있었다. 빛과 속도가 우리를 환희로 채운다. 평소보다 더 세고 거칠게 페달을 밟는다. 달콤하면서 겁도 조금 난다. 깜짝 놀란 몸의 감각들이 일순간에 폭발할 것 같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12

일종의 비애, 슬픔과 무력감. 문득 의자에 묶여서 페이즐리 무늬 침대보 위의 엄마와 신부를 바라보던 다섯 살의 리처드가 떠올랐다. 아이는 그날 밤 이후로 현명해진 것이 아니었을까. 아이는 엄마가 힘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굴욕과 부끄러움을 교환하고 있었다는 걸 알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제 자기가 아는 것을 실험해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22

그림의 의미가 그제야 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작품에 힘을 주는 건 집중력이구나. 내 안의 공간이 넓어진다. 내 안의 직사각형 공간 속으로 빛과 공기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사고가 명징해지고 언어가 풍부해지고 지성이 작동을 개시한다. 외로움, 불안, 자기연민으로 가득했던 내면의 공간이 놀데의 꽃을 보며 점점 확장된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23

그 공간이란 뭘까. 내 이마 한복판에서 시작돼 가랑이에서 끝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내 몸만큼 넓기도 하고 화살구멍만큼 좁아지기도 한다. 생각이 자유롭게 흐르는 날이면,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할수록 명확해지는 날이면 감사하게도 이 공간은 무한히, 아름다운 날씨처럼 확장된다. 그러나 불안과 자기연민이 치고 들어오는 날이면 쪼그라든다. 얼마나 삽시간에 쪼그라드는지! 이 공간이 넓어져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나는 그 안의 공기를 맛보고 또 느낀다. 나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호흡한다. 마음은 평화롭고 기대감에 차서 사는 게 즐겁고 어떤 영향력이나 위협에서도 놓여난다. 그 어떤 것도 나를 건드릴 수 없을지니. 나는 안전하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생각과의 전쟁에서 지면 경계선은 좁아지고 공기는 오염되고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사방이 수증기와 안개뿐이다.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24

오늘은 창창한 날, 예감이 좋은 날이다. 어딜 가건, 무엇을 보건, 내 눈이 무엇을 보고 내 귀가 무엇을 듣건 간에 내 안의 공간이 넓게 열리며 빛이 가득 들어온다. 나는 생각하고 싶다. 아니, 그러니까 오늘은정말로 생각을 하고 싶다. 그 욕망이 ‘몰입’이라는 단어로 자신을 드러낸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25

엄마를 만나러 간다. 거의 날아갈 듯 몸과 마음이 가볍다. 나는 날고 있다! 엄마에게도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이 긍정의 기운을 나눠주고 싶다. 불타오르는 생의 환희, 살아 있음에서 오는 행복감을 심어주고 싶다. 그래도 엄마는 내 가장 오래된 친구가 아닌가. 이 순간,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다. 엄마까지 사랑할 수 있다.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25

내 안의 공간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벽이 무너진다. 숨쉬기가 곤란해진다. 천천히 침을 꼴깍거리며 중얼거린다.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는 참 딱 적당할 때 적당한 말을 할 줄 안다니까. 놀라워. 그것도 재능이야. 숨통을 콱 막히게 해."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25

하지만 엄마는 알아듣지 못한다. 내가 지금 비꼬고 있는 줄도 모른다. 지금 나를 나자빠지게 했다는 것도 전혀 모른다. 내가 엄마의 불안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엄마의 우울함에 완패해버렸다는 사실을 조금도 알지 못한다. 어떻게 알겠는가? 엄마는 내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데. 엄마한테 말할까. 그건 죽음과도 같다고, 내가 여기 있는 걸 엄마가 모른다는 게, 절망과 혼란만이 가득한 눈으로 그저 멍하니 날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서른일곱 살 먹은 이 여자아일 못 본다는 게 슬퍼서 죽고 싶어진다고 말을 할까? 엄마는 또다시 언성을 높이겠지. "넌 날 이해 못해. 여지껏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어!"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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