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생각할 때 나는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J. M. W. Turner의그림들이 떠오른다. 영국의 국민화가 터너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반, 산업혁명이 개화하고 만개하는 시대에 살았다. 런던에서 산업화의일거수일투족을 목격하며 자란 그는 그 시대의 상징과 같은 증기기관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 P231

터너가 좋아했던 항구는 여정의 끝자락이자 새 출발지다. 출항하는 배에 몸을 실으면 시야에 가득한 망망대해에 잠시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하지만 이내 그보다 더 큰 흥분이 솟아난다. 그 힘으로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 P243

반 고흐가 20세기 이후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된 데에는 그의 절망적 인생사가 큰 몫을 했다. 그의 생은 우울, 결핍, 실패, 좌절 등 음울한 단어로 점철되어 있다. 생전에 무명 화가에 머물렀던 반 고흐는 사후에 ‘미치광이 천재‘ 이미지와 함께 신화의 반열에 올랐다. 화려한 색채, 과감하고 단절적인 붓 터치, 소용돌이치는 풍경에서 많은 이들은 그의 뒤틀린 내면과 그곳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동시에 읽었다. - P246

이 가정에서 반 고흐는 어떻게 자랐을까? 어릴 적 반 고흐를 가장괴롭힌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죽은 형이었다. 육 남매 중 맏이인 반고흐에게는 그의 생일보다 딱 1년 앞선 1852년 3월 30일에 출생 도중사망한 형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빈센트 반 고흐였고, 부모는 1년 후같은 날 태어난 둘째 아들에게 죽은 첫째 아들의 이름을 주었다. 그렇게 반 고흐는 자기 이름과 생일이 적힌 묘비를 보며 자라야 했다. 게다가 어머니의 상상 속에는 ‘완벽한 맏아들‘의 이상으로서 형이 살고 있었다. 그 이상은 반 고흐가 평생 지향해야 하지만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실체 없는 라이벌이었다. - P250

1886년 파리에서부터 반 고흐의 그림에 색이 더해지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반 고흐는 당대 최고의 화풍인 인상주의와 그로부터 파생한 여러 새로운 시도를 접했다. 빛과 색채, 점묘법, 일본 목판화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한 관심을 키우면서 내면의 정서를 표출할 수 있는 고유한 스타일을 찾아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진정한 회화는 색으로 형태를 입히는 것"이라 말할 만큼 밝은 색상에 매료되었다. - P256

반 고흐는 자신의 그림이 누군가의 추위를 이기게 하는 힘이 되길 바랐다. 자신이 봄을 기다린 만큼 그들도 봄을 맞이하기를 원했다. 내가 눈길을 걸을 때 아를의 눈 덮인 들판을 보며 봄을 기다렸듯, 누군가는 그의 「해바라기」를 보며 삶의 의지를 다지고 누군가는 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며 한밤중 용기를 얻을 것이다. - P264

19세기 초 잉글랜드 시골이 컨스터블의 풍경처럼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 사회적 변화와 함께 농촌생활이 점차 황폐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 흐름이었다. 그러나 유복하고 안정적으로 자란 컨스터블에게 시골 마을은 불안정한 현실과 대비되는 마음의 돛대 같은 공간이었다. 그에게 그림은 "감정의 다른 말이었기에 그는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라도 그 장면이 일으키는 정서에 의존해 그림을 그렸다. 익숙한 풍경이 주는 안정감으로 현재의 불안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 P271

현실을 외면하려 한 이들은 컨스터블만이 아니었다. 영국의 풍경은 갈수록 컨스터블의 묘사와 멀어졌지만, 그럴수록 영국인들은 그의 그림을 ‘가장 영국적인 풍경‘으로 칭송하며 좋아했다. 20세기가 되어 컨스터블은 어느새 ‘가장 영국적인 화가‘가 되었다.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나와 컨스터블,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일까? 그것이 얼마나 현실을 대하는 건강한 자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 P271

컨스터블은 아주 개인적이고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방향을 찾지 못할 때마다 그의 삶에 지표가 되어준 것은 고향의 풍경과 가족이었다. 그 지표를 따라 다시금 길을 찾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1828년 아내의 이른 죽음으로 다시 한번 극적인 슬픔에 빠졌을 때도 그는 세 아들을 생각하며 삶을 지속했다. 아들을 향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작품활동을 계속했고, 그 그림 속 풍경은 항상 그리운 과거의 한순간이었다. - P277

나는 과거지향적인 사람이다. 앞으로 경험할 기회가 있는 미래보다 실체로 살아보았고 다시 만날 기회가 없다는 점에서 과거가 좀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과거를 차마 보내지 못하는 컨스터블과 그 시대 영국인들의 마음에 사뭇 공감했다. 흘러가는 시간은 붙잡을 수 없으니 시간이 떠난 자리에 남아 있는 공간이라도 붙잡아 그것만큼은 흘러가지 않기를 그들은 바랐던 것이다. - P281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의미의 라틴어 격언이다. 고대 로마 시절, 원정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로마 군대의 노예들은 장군을 향해 ‘메멘토모리 !‘라고 외쳐야 했다고 한다. ‘오늘 당신이죽인 적군의 시체처럼 당신도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으니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고 지휘관에게 죽음을 상기시키는 관행이었다. - P286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 말고 어떠한 죽음을 맞을지를 두려워하라. 죽음이 춤추며 너를 찾아왔을 때, 너는 죽음의 손을 잡고 함께 춤출 수 있는가? - P297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삶의 지혜를 통달할 즈음이면 삶의 결말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평온에 이를 수 있을까? 남은 생애 중 죽음과 가장 멀리 떨어진 오늘만큼은 두려움을 내려놓고 그저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싶다. - P301

서로를 떠나는 듯한 「디에프의 여섯 친구들」의 모습이 실은 그들 우정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이 작품 최고의 반전이었다. 이렇게 생각했다. 앞으로 만약 이 그림처럼 내가 너에게 고개를 돌리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면, 반대로 네가 나의 기쁨과 위로가 되었던 순간들을 반드시 기억해내 다시 한번 너를 바라보고 붙잡겠노라고.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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