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에두아르는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그 감정은 지나갔다. 두 남자는 상호적인 경멸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에두아르의 삶은 무너지고 있었으니, 자신을 지탱하기 위한 증오조차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패배한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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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는 다시 눈시울이 축축해졌다. 그런데 알베르 앞에서 너무 울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 그 무렵 알베르도 그의 개인적 상황 때문에 걸핏하면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그의 심정을 이해하는 에두아르는 그냥 친구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기만 했다. 너무나도 미안했다.

한 명은 편집증이고 한 명은 장애인인 이 두 남자는 이내 다른 거처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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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는 친구의 불행을 지극히 가슴 아파했고, 〈저 친구가 날 도우러 오지만 않았어도……. 그것도 전쟁이 끝나기 불과 며칠 전에……〉라는 생각을 좀처럼 떨치지 못했다. 에두아르는 에두아르대로 알베르가 두 사람의 삶을 혼자서 짊어지느라 얼마나 힘들까 생각했고, 그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고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들은 부부처럼 된 것이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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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커다란 방의 문턱에서 잠시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러더니 예고도 없이 에두아르에게 다가와서는 그의 얼굴에 검지를 뻗었다. 이에 에두아르는 무릎을 꿇더니 ─ 알베르는 정말이지 에두아르와 같이 지내다 보니 별 희한한 것을 다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계집애가 손가락으로 그 커다란 심연의 언저리를 따라서 만져 보도록 놔두는 거였다. 그녀는 숙제를 하는 것처럼 골똘하고도 진지한 모습이었다. 마치 프랑스 국토의 형태를 알아보기 위해 연필로 지도의 윤곽을 꼼꼼히 따라가 보는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루이즈는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에두아르의 집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그를 위해 여기저기서 전전날, 혹은 전 주의 일간지들을 가져다주었다. 그때부터 신문을 읽고, 기사를 오려 스크랩하는 것이 에두아르의 유일한 소일거리가 되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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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콧구멍으로 담배를 피우는 에두아르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코 밑에서 시작하여 목에 이르기까지 얼굴 아랫부분 전체를 덮어, 그리스 비극 배우의 턱수염과도 비슷해 보이는 진청색의 마스크였다. 짙으면서도 반들거리는 청색 위에는 건조시키기 전에 반짝이를 뿌린 듯, 미세한 금빛 점들이 흩어져 있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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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처럼 이제 마스크들이 함께 있었다.

며칠 후, 에두아르는 커다랗게 미소 짓는 입이 그려진 새하얀 마스크를 썼다. 그걸 쓰고 있으니 위쪽의 웃음기 있는 반짝이는 두 눈과 어울려 마치 이탈리아 연극의 배우, 스가나렐 혹은 팔리아초[27]처럼도 보였다. 이때부터 에두아르는 신문 읽기를 마치면 종이 반죽을 개어 백묵처럼 새하얀 마스크들을 만들었고, 그 위에 루이즈와 함께 색칠을 하거나 장식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장난이었던 것이 이내 본격적인 일과가 되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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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와 루이즈는 마스크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에두아르는 같은 것을 두 번 쓰는 법이 없었고, 새로운 마스크에 밀려난 예전의 마스크들은 동족들과 함께 벽에 걸렸다. 사냥한 동물의 대가리로 만든 기념품들, 혹은 가장무도회 용품 상점에 진열된 의상들처럼.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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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가 보기에 세상은 두 종류로 구분되었다. 하나는 죽을 때까지 뼈 빠지게, 그리고 맹목적으로 일하면서 그날그날을 불쌍하게 연명해 가는 마소 같은 존재들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 엘리트들이다. 그들의 〈개인적 요소들〉 때문에 말이다. 앙리는 어느 날 이 표현을 군사 보고서에서 읽은 후, 너무도 마음에 들어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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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게 이 둘로 환원된다. 쌩쌩 날아다니는 것들, 그리고 뒈져 버리는 것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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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는 눈을 감았다. 근육이 서서히 이완되는 걸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손에서 떨어지려 하는 주사를 아슬아슬하게 잡아서는 가까이에 내려놓았다. 손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지만, 조인 듯 답답하던 가슴은 벌써 풀리기 시작했다. 주사를 맞고 나면 텅 비어 버린 느낌으로 오랫동안 쭉 뻗어 있곤 하는데, 잠이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상태로, 불안감이 마치 멀어져 가는 배처럼 서서히 물러갔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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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는 죽은 고깃덩어리 같은 존재에 불과했지만, 앞날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의 삶은 운명이 던진 주사위 한 방에 무너져 버렸고, 그 추락은 모든 것을, 심지어는 두려움마저 앗아 간 것이다. 그의 마음을 실제로 짓누르는 유일한 감정은 슬픔이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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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머리를 들었고, 거리를 두고 보기 위해 종이를 멀리 놓았다. 시작이 괜찮다. 여자는 서 있고, 옷의 주름들도 괜찮게 표현되었다. 주름의 표현이 가장 어렵다. 모든 의미가 주름과 시선에 집중되어야 한다. 바로 여기에 비밀이 있다. 이런 순간들에 에두아르는 거의 회복되어 있었다.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큰돈을 벌게 될 거였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알베르는 깜짝 놀라리라.

그리고 놀라는 사람은 그 친구 하나만이 아니니라.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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