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 경찰서에 가서 자백할 수도 있다. 성직자를 찾아가 고백할 수도 있다. 나는 사람을 먹었습니다. 이것이 죄가 됩니까? 그러면 그들의 방식으로 나를 처리해주겠지. 나는 말하라는 것을 말하고 가라는 곳으로 가면 될 것이다.
이 글을 끝내고, 그리고 최대한 오래 살아남는 것.
내가 원하는 전부다. - <구의 증명>, 최진영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2075 - P8
천 년 후에도 사람이 존재할까?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 <구의 증명>, 최진영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2075 - P3
나는 아주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 인간이란 생명체가 우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그날까지. 인류 최후의 1인이 되고 싶다는 말이다. 이것이 내 유일한 소원이다. - <구의 증명>, 최진영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2075 - P4
궁금하다. 천 년 후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일에 충격을 받을지, 혐오를 느낄지, 공포를 느끼고 불안해할지, 모멸감에 빠질지. 어떤 일을 비난하고 조롱할지. 어떤 자를 미친 자라고 부를지. 어떤 이야기에 공감하고 무엇을 갈망할지. 천 년 후의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그때에도 돈이 존재를 결정할까. 대체 뭘 먹고 살까. 지금의 ‘인간적’이라는 말과 천 년 후의 ‘인간적’이라는 말은 얼마나 다를까…… 천 년 후 사람들은 지금과 완전히 다르리라 믿고 싶다. 아니, 천 년 후에는 글을 쓰고 읽는 인류 따위 존재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렇다. 글을 쓰고 읽는 인간으로서, 내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나는 그만큼,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 - <구의 증명>, 최진영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2075 - P5
성서는 언제 쓰였지? 적어도 이천 년은 넘지 않았나? 어떤 사람은 이천 년 전에 써진 글을 읽으며 감동하고 위로받고 황홀해하고 미친다. 그리고 믿는다. 섹스 없이 아이를 낳았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그건 사십 일 동안 비가 내렸다거나 바다가 갈라졌다는 것과 차원이 다른 사건인데…… 터무니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 믿음은 아주 유용하다. 말도 안 돼, 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일에야 믿음이란 단어를 갖다붙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단 믿으라. 그러면 말이 된다. - <구의 증명>, 최진영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2075 - P6
내겐 부활과 동정녀의 잉태가 필요하다. 윤리나 과학이 끼어들 여지없는 기적이 필요하다. 천 년 후가 필요하다. 종말 혹은 영생이 필요하다. 미친 자아가 필요하다. 인간이 아닌 상태라도 좋으니, 당신이 필요하다.
믿음이 필요하다. - <구의 증명>, 최진영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2075 - P7
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
죽은 구는 꼭 술에 취해 곤히 잠든 사람 같았다.
나는 길바닥에 앉아 죽은 구를 안고서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바람에서 새 옷 냄새가 났다. - <구의 증명>, 최진영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2075 - P9
네가 올 줄 알았다.
오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분명 너를 기다렸지만, 내가 죽기 전에 오길 바라는지, 죽은 후에 오길 바라는지…… 혼란스러웠다. 살아 있을 때도 원하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해 종종 너에게 선택을 미뤘고 때문에 핀잔을 들었는데,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나는 내 마음을 읽지 못해 갈팡질팡했다. 죽는 모습을 너에게 보이기 미안했다. 죄스러웠다. 너에게 그런 짐을 떠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내 부재만큼이나 네 남은 생에 지우기 힘든 얼룩과 상처를 남길 테니까. 죽기 전에 너에게 꼭 해야 할 말은 없었다. 없는 줄 알았다. 말해야 할 것은 너와 함께했던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다 하였을 테고, 그럼에도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굳이 말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 <구의 증명>, 최진영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2075 - P11
길이 시작되는 곳에 고여 있는 가로등 불빛을 봤다.
눈을 감기 전까지 그것을 보았다.
저거 되게 따뜻해 보이네.
그런 생각을 했다.
담이는 저기로 오겠네.
그런 생각을 했다.
……저거 꼭 담이네. - <구의 증명>, 최진영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2075 - P13
담은 나쁜 애가 아닌데. 담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 담이와 보내는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 담이 하는 것은 나도 하고 싶었고, 담이 가는 곳에는 나도 가고 싶었다. 나쁘지도 올바르지도 않은 채로, 누가 누구보다 더 좋은 사람이다 그런 것 없이 같이 있고 싶었다. - <구의 증명>, 최진영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2075 - P28
어차피 관심 없지 않았는가. 사람으로서 살아내려 할 때에는 물건 취급하지 않았는가. 그의 시간과 목숨에 값을 매기지 않았는가. 쉽게 쓰고 버리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 하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받던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 - <구의 증명>, 최진영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2075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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