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는 재미나게 놀았고, 그녀와는 <대화들>을 나눴다. 둘 중에 그녀가 주도권을 쥔 인물, 바로 법이었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54
우리는 둘 다 서로의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녀, 남자애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나의 열망을. 나, <내게 불행한 일이 닥치고 말 거다>, 그러니까 아무하고나 잠자리를 같이 하고 임신이 될 거다라는 어머니의 강박관념에. 가끔씩, 그녀가 죽는다 해도 그것이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거라는 상상을 했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57
나는 어머니가 다리 사이에 병을 끼고서 병마개를 딸 때면 눈길을 돌려 버렸다. 나는 그녀가 말하고 행동하는 거친 방식이 부끄러웠는데, 내가 얼마나 그녀와 닮았는지 느끼고 있는 만큼 더더욱 생생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59
다른 세계로 옮겨 가고 있는 나는 내가 더 이상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여전히 내 모습인 것에 대해서 어머니를 원망했다. 그리고 교양을 갖추려는 욕망과 실제로 교양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 사이에 깊은 구렁텅이가 존재함을 깨달았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59
그녀는 내 학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랐다. 나는 어머니를 너무나 찬미해 왔었기에, 나를 곁에서 지원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집에 서재가 있는 친구들과 학교라는 세계에 방치된 것에 대해서, <누구랑 있었니? 적어도 공부는 하고 있지>라며 자신의 불안과 의심을 쓸데없는 짐으로 안겨 줄 뿐인 그녀를 아버지보다 더 원망했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59
내 어머니로서는 반항한다는 것의 유일한 의미는 가난을 거부한다는 것이었고, 그 유일한 형식은 노동하고 돈을 벌고 남들만큼 훌륭하게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부터 어머니가 나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나 역시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그 씁쓸한 비난이 비롯됨.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60
어떤 순간들에는 자기 앞에 있는 딸 속에 계급의 적이 있었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61
나는 떠날 수 있기만을 꿈꿨다. 그녀는 내가 루앙의 고등학교에, 나중에는 런던에 가는 걸 막지 않았다. 내가 자신보다는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어떤 희생이든, 심지어 어머니로서는 가장 큰 희생인 나와 떨어져 지내는 것마저도 감수할 준비가 됨.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61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더 이상 함께 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는 친절, 거의 수줍음이라고 할 만한 것들. 여러 해 동안 나와 그녀의 관계는 떠났다가 돌아감의 반복에 머물렀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63
스무 살 때까지 나 때문에 그녀가 늙는다고 생각했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64
「살림을 야무지게 살아야 한다. 쫓겨나서는 안 된다.」 이 한 문장, 결혼식 전날 내게 말했던 이 한 문장. 그 속에, 자신이 그 세계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과 여전히 나를 그러한 감정에 결부시키고 있음(그러한 감정이 지워지려면 아직도 한 세대가 더 지나가야 했던 모양이다)이 전부 드러남.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67
신문에서 <절망은 사치다>라는 글귀를 막 읽었다. 나는 책을 쓸 시간과 형편이 되니, 어머니를 잃고 난 뒤 쓰고 있는 이 책 또한 사치일 것이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70
내가 청소년기에 <우리보다 더 나은 환경>에 놓였을 때 느꼈던 불편함, 그 감정을 그녀가 내 집에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마치 <열등한 사람들>만이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차이점들로 힘들어한다는 듯이).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73
더 이상 거친 말은 단 한 마디도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았고,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다루려고 애를 썼다. 한마디로, 스스로를 <감시>하고 자신의 폭력성을 억눌렀다. 심지어, 자기 세대의 부르주아 여인들에게는 젊어서부터 주입되었던 그 지식을, 완벽한 집안 살림 요령을 뒤늦게나마 따라잡은 것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76
그리고 확실히, 그녀가 50년간 겪었던 마을 사람들, 요컨대 딸과 사위의 성공에 대한 증인으로 삼기를 바랐을 그 유일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두 사람의 성공을 직접 확인할 일이 결코 없으리라는 데에서 오는 은근한 불만을 느낌.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78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보다는, 보름 동안 우리의 삶 속으로 어머니를 끼워 넣는 것이 내게는 더 쉬울 듯했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80
그녀의 이야기는, 세상에 그녀의 자리가 있었던 시기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멈춘다. 그녀는 정신이 나갔다. 그것은 알츠하이머병이라고 불린다. 의사들은 일종의 노망에 그런 이름을 붙여 주었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85
며칠 전부터 글 쓰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 순간에 결코 도달하지 않기를 바라서이리라. 하지만, 나이 들어 노망난 여자와 젊어서 힘차고 빛이 났던 여자를 글쓰기를 통해 합쳐 놓지 않고서는 내가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85
그 주 내내, 그녀가 살아 있던 그 일요일이, 갈색 털양말, 개나리, 그녀의 몸짓들, 작별 인사를 건넸을 때 짓던 그 미소가 떠올랐고, 잇달아 그녀가 침대에 누워 숨을 거둔 그 월요일이 떠올랐다. 나는 그 두 날을 이어 보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이어진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99
21세기의 언젠가, 내가 이곳이든 혹은 다른 곳에서든 냅킨을 폈다 접었다 하면서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그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 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100
가공의 존재로서의 어머니가 실질적 부재로서의 어머니보다 더 강하게 다가오는 그 느낌이 아마도 망각의 첫 번째 형태이리라.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101
그녀는 시몬 드 보부아르보다 일주일 앞서 죽었다. 그녀는 받기보다는 아무에게나 주기를 좋아했다. 글쓰기도 남에게 주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102
이것은 전기도, 물론 소설도 아니다. 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리라. 어머니의 열망대로 내가 자리를 옮겨 온 이곳, 말과 관념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스스로의 외로움과 부자연스러움을 덜 느끼자면, 지배당하는 계층에서 태어났고 그 계층에서 탈출하기를 원했던 나의 어머니가 역사가 되어야 했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102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 <한 여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6514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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