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나는 내 부모를 그들의 몸짓과 말, 영광스러운 몸으로부터 정제했다. 나는 그들이 《엘(그녀)》이라고 발음하는 대신에 《아》라고 발음하고, 큰 소리로 말하는 방식을 새롭게 들었다. 이제 내게 자연스러워진 그 《점잖은》 몸짓과 올바른 언어 없이 그들의 원래 모습 그대로를 다시 만나게 됐고, 나는 나 자신과 분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남자의 자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0322 - P91

나는 오래 머무는 법이 없었다. 그는 남편에게 전해 주라며 코냑 한 병을 내게 줬다. 《그래, 다음에 보면 되지.》 그는 내색하지 않고, 감정을 숨기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 <남자의 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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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65세에 사회 보장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스러워했다. 약국을 다녀오면, 식탁에 앉아 행복해하며 보험금 청구용 증지를 붙였다.

그는 점점 더 삶을 사랑하게 됐다. - <남자의 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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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그가 자신이 위독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말뿐이었지만, 세상에 매달리는 그의 노력이 그가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 <남자의 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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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레 망다랭을 읽으며 아이를 지켜봤다. 이 두꺼운 책을 읽다 보면 어떤 페이지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가 더는 살아 있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독서에 집중할 수 없었다. - <남자의 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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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교양 있는 부르주아의 세상으로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두고 가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일을 마쳤다. - <남자의 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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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비가 와도, 해가 쨍쨍해도, 두 강 사이를 건너는 뱃사공이었다.

어쩌면 그의 가장 커다란 자부심 아니 심지어 그의 존재 이유는 자신을 멸시하는 세상에 내가 속해 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 <남자의 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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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가 기억을 말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녀는 ‘민족지(Ethnography)’라는 표현을 썼다. 민족지란 특정한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대한 기술적 설명, 인간 관습에 대한 분석을 뜻한다. 그녀는 작품 속에서 기억의 관습을 분석하고, 그것의 기술적 설명을 이뤄낸다. 분석과 기술적 설명에는 미화가 없다. ‘나(아니 에르노)’도 ‘그(아버지)’도 이미 거기 없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하지 않는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단조로운 글쓰기다. 필요한 단어로만 기억의 세계로 뛰어드는 일. - <남자의 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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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인생이 아니에요. 문학은 인생의 불투명함을 밝히는 것이거나 혹은 밝혀야만 하는 것이죠. - <남자의 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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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불투명한 혹은 어두컴컴한 곳에 불을 밝히는 것, 나는 그것이 작가, 아니 에르노의 문학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저 보여주는 것, 화자의 감정에 붙잡히지 않도록 칸막이를 없애는 것. 이 모든 것은 불투명한 인생을 밝히기 위함이다. 쓰지 않으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느 불투명한 삶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완벽한 오마주가 어디 있을까? 그녀의 글은 아버지를 향한, 그녀가 내려놓고 떠났던 세상을 향한 오마주다. 그리고 이 오마주는 예술의 편에 서 있지 않다. 삶이 먼저, 문학은 그다음이다. 삶이 문학이 되기 위해 꾸며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 <남자의 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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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사람이나 물건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란 뜻의 ‘La place’가 과연 한 남자, 아버지의 자리만을 의미할까? 내게는 그 자리, 혹은 공간이 한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아버지가 있었고 내가(작가) 있었던 자리, 다른 세상으로 가면서 문턱에 버리고 간 자리. 나는 그 ‘자리’의 가능성을 이곳에라도 적어 두고 싶다. - <남자의 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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