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의 조선 역시 같은 전략으로 1876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당하기 전까지 가능한 한 문을 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오늘날의 많은 한국인들은 개항을 빨리해 자유무역을 했다면 조선이 강해졌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조상들의 무식함과 고집스러움을 탓하곤 한다. - P15

개항 전 가장 유명한 화폐 관련 사건은 흥선대원군의 당백전 주조일 것이다. 당시 조선의 집권층이 당백전 주조로 대표되는 여러 실책들을 저질러서 조선의 경제가 망가지고 끝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는 관점도 흔하다. 즉 내부에서부터 알아서 무너져가고 있던 조선에 일본이 손쉽게 ‘진출‘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백전과 관련된 사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의 망조는 일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P21

1860년경, 그러니까 경복궁을 짓기 시작할 무렵 조선에서는세금의 25%만이 화폐로 납부되었다. 나머지 세금은 쌀이나 면포 같은 현물로 내는 실정이었고, 화폐의 양은 국내 총생산의. 3% 수준이었다. 그러니 아주 단순화하면 국내 총생산의 97%에 해당하는 거래는 쌀과 면포가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 P25

당백전 발행 5년 후인 1871 년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군대에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1874년 고종이 일선에 나설 즈음부터 보급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시점에서 갑자기 보급을 못하게 된 것이, 즉 나라에 돈이 없어진 것이 8년 전 단 6개월 동안 발행한 당백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 P30

신기한 장난감 같은 서양 상품이 많이 들어와서 걱정이 될지경이라는 기록이다. 그 신기한 장난감들의 정체는, 황현의 『매천야록』에서 나온 다음 대목에서 짐작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 상품 열 가지 가운데 공산품이 아홉을 차지했는데, 외국으로 나가는 우리 상품은 열 가지 가운데 아홉 가지가 천연자원이니, 우리의 아둔함이 너무 심하다. 대개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상품들은 비단·시계 · 칠기같이 교묘하고 기이한 물건들이며, 다른 나라로나가는 상품들은 모두 쌀 · 가죽 · 금·은과 같이 평소 생활에 필요한 보화들이다. 그러니 나라가 척박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외국 상인들은 비단 ·시계·칠기 같은 공산품이나 사치품을 팔아, 조선에서 쌀 ·가죽·금 등 생활 필수품이나 원료 위주로 사들였다는 것이다. 당시에 이런 식의 무역으로 경제가 어려워지고 끝내 열강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모습은 세계적으로 흔한 광경이었다. - P33

조선은 손해보는 거래를 수년째 이어오고 있는데다가 개항을 맞아 외국 상인들의 고삐마저 풀려버렸으니, 조선에 돈이 마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개항 3년 만에 나라 창고가 비어 급료로 줄 쌀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 P37

이렇게 외국과의 거래로 화폐 대체품들에 문제가 생기자,
오히려 조선 경제에서 화폐가 차지하는 역할이 커졌다. 어떻게든 거래는 할 수 있어야 경제가 돌아가는데, 돈으로 삼을 만한 것들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그 틈새를 일본 엔화가 치고 들어왔다. 조선과 일본이 처음 개항 조약을 맺을 당시, 일본은 자국의 화폐를 조선에서 쓸 수 있게 허용하는 조항을 넣었다. - P43

이런 식으로 위조, 환투기, 일본 화폐 도입이라는 충격이 계속된 결과, 조선에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1876년개항 이후, 3년 만에 나라에서 급료를 제대로 주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4년 만에 이미 조선 조정에서 물가가 너무 올라다 같이 망할 것이라는 비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 P52

결국 외국 상인들의 침략 때문에 개항기의 조선 경제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고, 초인플레이션이 수년간 일어났던 것이다. - P55

그런데 최소 26톤의 금을 조선에서 더 들여왔으니, 일본은 신용 높은 금화를 더 많이 만들어서 세계 시장에서 무기든 기계든 원료는 얼마든지 사올 수 있었고, 이는 일본 경제가 기존금 보유량 대비 최소 69% 이상 조선의 금을 바탕으로 추가 성장했음을 의미했다26-37.5×100-69.3. 개항기 조선 금만으로 경제 규모가 69% 커진 것이다. 1876년 개항에서부터 자료 마지막의 1904년까지, 일본은 조선의 금으로 30년간 알짜 성장을 누릴 수 있었다. - P98

조선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말기의 조선이 부패한 나라였다는 것은 일단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장 개항기에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 예를 들면 군인들의 반란인 임오군란 1882년이나 전국적인 농민 반란인 동학농민운동1894년 등의 시작은 모두 관리들의 횡포에 대한 분노였다. - P101

당백전에 이어 조선 경제를 절단낸 조정의 실책 2’정도로 취급받는 백동화 발행이 합계 1,300만 원인데(앞에서 나온 전환국 화폐 주조량 표-7을 보면 된다), 제일은행권 발행 합계가5,700만 원이다. 두 표의 시기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으나, 조선 조정이 찍어낸 백동화의 4배가 넘는 화폐를 일개 은행인 제일은행이 조선 땅에 뿌렸다는 것이다. - P168

나중에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이 되자, 일본 정부는 화폐정리사업을 벌여 기존에 있던 조선의 화폐는 다 무효화하고, 새로 일본 엔화와 연동된 조선 전용의 화폐를 만들어 쓰도록했다. 이 사업을 위해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에서 모든 비용을 빌렸는데, 그 새로운 화폐를 만든 곳은 또다시 제일은행이었다. 외국의 일개 은행이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된 것이다. - P169

이렇게 조선에서 성공을 거듭하던 일본인들은 몇 년이 지난 1910년에 한일합병을 성사시키고, 조선에서 열심히 뜯어온 돈으로 ‘낭만‘을 즐기는 시대를 맞았다. 1912년 무렵의 다이쇼 로망이 그것이다. - P190

따라서 산미증식계획의 두 축인 수리조합과 비료 보급을 보면, 조선인들을 희생해 일본 대농장 주인들의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 정책이 시행되었고, 근대화나 자유시장경제 등은 그저 번지르르한 명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경제 정책의 일관된 목표는 조선의 발전이 아니라 조선에서 일본 재벌들이 가장 많은 이익을 내도록 하는 것이었고, 이때 조선에 근대화와 자유경쟁시장 비슷한 것을 강요할수록 일본인들에게 이득이 더 생기는 구조였을 뿐이다. - P245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경제는 큰 호황을 누렸다.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소설에서 나오듯이 매일 엄청난규모의 파티를 열며 흥청망청하던 것이 이 시기 세계 열강의 모습이었다. 일본도 다이쇼 로망이라며 잘 나간다고 한참 들떠 있던 때였다. - P255

1945년 8월 15일 연합국에 항복했다. 일본이 자국의 주머니까지 다 털어가며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식민지 조선에 무언가 남겨둘 여유도 이유도 전혀 없었으니, 전쟁 후 조선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이 패망 때까지 지폐를 마구 찍어 조선에 뿌리는 바람에, 해방 후 조선은1944년 물가지수 241 에서 3년 만에 4만 926이라는 170배가 오른 인플레이션을 떠안게 되었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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