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 가업을 물려받는 일은 흔치 않다. 아버지가 무슨 회장님쯤 된다면 모를까. 가업이란 아무나 이을 수 없는 귀하디귀한 것이다. 어디 가서 "가업을 물려받을 계획이야"라고 말하면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8

"네, 아버지처럼 저도 풀빵을 굽는데요?"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13

"붕어빵이 무슨 죄가 있냐. 틀에 박힌 사고가 문제지. 그리고 붕어 대신 팥앙금이 들어가질 않느냐? 붕어빵에 팥이 들어간 건 일종의 사고의 전환이라고 보는 게 옳지. 막상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가면 끔찍할걸. 이름과 실제가 같은 게 좋기만 한 건 아니다. 같지 않아서 좋을 때가 더 많지. 아, 쥐꼬리만 한 문어 조각에 타우린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니."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16

배가 아파 화장실로 급히 뛰어갔는데, 한바탕 시원하게 쏟아낸 것 같은데, 분명히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온 게 맞는데, 쏟아낸 게 부족한 것 같지도 않은데, 여전히 미묘하게 배가 아프고 밑을 닦으려니 찝찝한데, 하지만 더이상 나오지 않고, 결국 심각한 표정으로 변기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이 상황은 내가 타꼬야끼의 세계로 입장하면서 해결되었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17

아버지가 빚는, 아니 굽는 붕어빵은 이거 완전 붕어빵이네! 할 정도로 똑같았다. 팥앙금의 양이 다를 수 있지 않느냐고? 명인의 손은 모든 붕어빵에 공평한 팥앙금을 부여했다. 공평하게 구워진 수백개의 붕어빵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오병이어는 다섯개의 떡과 두마리의 물고기고 붕어빵은 빵이면서 물고기니, 어린 내 눈에 아버지가 만든 수백개의 붕어빵과 수천년 전 기적은 다르지 않았다. 과자를 받기 위해 교회에 나갈 때라서 그랬을까.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18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붕어빵을 구웠다. 정확히 말하면 수능시험을 보고 나서 곧바로 붕어빵을 구웠다. 점퍼를 껴입은 학생 서넛이 모여 군고구마를 파는 아마추어와는 달랐다. 용돈을 벌 생각이 아니라 평생직장으로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친구들이 대학교를 탐방하고(그래봐야 점수 맞춰 쓸 거면서) 전공과 진로를 탐색하고(그래봐야 점수 맞춰 쓸 거면서) 배치표를 사다가 자신이 지원할 대학을 결정하고(그래봐야 점수에 맞는 대학 몇군데 중에서 고를 거면서) 입학원서를 쓰고 합격과 불합격의 기로에서 허우적댈 때(그럴 줄 알았지), 나는평화롭게 붕어빵을 구웠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18

하고 싶은 걸 하는 것과 쓸데없이 노는 건 언뜻 같아 보이지만 분명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젊은 애가 독특한 일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하면 은근히 속으로 비웃는다. 상대방의 노력에 대한 건 관심이 없고 뜨거운 열정은 철이 덜 든 것으로, 치기 어린 몰입으로 치부한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19

"깨달았다니 다행이구나. 이제라도 올리브유로 굽는 타꼬야끼는 버리고 붕어빵의 보금자리로 돌아오거라. 붕어빵은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너를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와 붕어빵이 눈물로 지낸 날들이 깊다."

-알라딘 eBook <풀빵이 어때서?> (김학찬 지음) 중에서 - P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