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창조성이 있다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읽기에 있는 것이며, 번역은 일차적으로 쓰기보다는 읽기의 문제다. 나는 번역의 쓰기도 창작의 쓰기와는 상당히 다르다고 보는데, 창작의 쓰기는 쓰기가 쓰기를 이끌고 나가는 면이 강하다면, 번역의 쓰기는 기본적으로 읽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6

보즈 바이어는 애트리지의 말을 빌려 "창조성이란 단지 문학적 글쓰기의 한 양상일 뿐 아니라 문학적 텍스트의 특징인 문학적 읽기의 한 양상이기도 하다"(『문학의 번역』)면서, 문학 번역이 창조적인 것은 원문의 창조적 읽기가 필요하고 또 번역 결과물도 독자에게 창조적 읽기를 허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있는 그대로 번역한다’는, 언뜻 보기에 대단히 비창조적인 문학 번역의 노력은 창조적 읽기를 통해 창조적 읽기가 가능한 결과물을 내기 위한 것이라는, 역시 역설적인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7

따라서 언어는 성긴 것이고, 그 빈 부분은 읽는 사람이 상상력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8

촘스키에 따르면, 언어적 창조성은 언어의 ‘무한한 생산성’, 즉 유한한 언어 자원이 창조적 정신 과정을 수행하는 인간의 능력에 의해 무한해진다는 사실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문학의 번역』)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83

하지만 지식인들에게 닥친 문제는, 각 사회에 고착화된 표현이 지배하는 언어 공동체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공동체의 주요한 기능은 현상을 유지하고 어떠한 변화와 저항도 없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에세이 ‘정치와 영어’에서 이 문제를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상투적 문구, 진부한 은유, 게으른 글쓰기는 ‘언어 부패’의 사례들이라고 오웰은 주장한다. 그 결과 인간의 사고는 경직되고 둔화되며, 부패한 언어는 슈퍼마켓의 배경 음악 효과처럼 인간의 의식을 장악하고 확인되지 않은 사상과 의견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유혹한다.(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84

번역의 언어는 독백의 언어가 아니다. 애초에 읽기에서, 대화에서 생겨난 언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번역은 언어의 사회적 성격, 구체적으로 언어적 창의성의 사회적 성격도 매우 예민하게 자각하고 있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