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는 1852년 임자생으로 만 열네 살에 황위에 올라서 재위 사십 년을 넘기고 있었다.

성인이 남면해서 천하의 소리를 듣고聖人南面而聽天下

밝음을 향해 나아가며 다스린다嚮明而治

라는 중국의 『역경易經』에서 명明, 치治 두 글자를 따서 치세의 연호로 삼았는데 사람들은 ‘밝음을 향해 나아간다嚮明’는 뜻으로 천황을 호칭했다. 메이지의 치세는 힘을 향해 나아갔다. 그의 시대에 밝음은 힘을 따라오는 것처럼 보였고, 시대는 그 힘을 믿었다. 천황의 군대는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이겼다. 천황의 무위武威는 세계에 떨쳤고, 아시아의 산과 바다에 시체가 쌓였다. 천황은 신사에 나아가서 여러 전선의 승리를 열조에게 고했고, 꽃잎처럼 떨어진 충혼들을 진무賑撫했다. 천황은 사해四海가 평온하고 백성들의 삶이 아늑하기를 기원했다. 천황이 신사에 참배할 때 삼엄하고 슬픈 기운이 당내에 가득찼다고 사관은 기록했다. - <하얼빈>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4512 - P10

이토의 침대 발치에는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항에 건설되었던 파로스 등대의 모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이토가 주물 장인에게 의뢰해서 제작한 청동제 스탠드였다. 모형 등대에 수면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동양과 서양, 대양과 대양을 연결하는 이 문명사적인 항구의 옛 등대를 이토는 거룩히 여겼다. 그것은 이 세상 전체를 기호로 연결해서 재편성하는 힘의 핵심부였다. 신호로써 함대를 움직이고 신호로써 대양을 건너가는 기술은 바로 제국이 갖추어야 할 힘의 본질이라고 이토는 늘 생각하고 있었다. - <하얼빈>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4512 - P18

도장을 찍어서 한 나라의 통치권을 스스로 넘긴다는 것은 보도 듣도 못한 일이었으나, 조선의 대신들은 국권을 포기하는 문서에 직함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 <하얼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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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는 조선 사대부들의 자결이 아닌 무지렁이 백성들의 저항에 경악했다. 왕권이 이미 무너지고 사대부들이 국권을 넘겼는데도, 조선의 면면촌촌에서 백성들은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 <하얼빈>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4512 - P21

아이가 젖을 자주 토해서, 김아려의 몸에서 젖 삭은 냄새가 났다. 아이의 몸과 어미의 몸이 섞인 냄새였다. 냄새는 깊고 아득했다. 안중근은 그 냄새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그 슬픔은 한 생명의 아비가 되고 어미가 되는 일의 근본인 것 같았다. - <하얼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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