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자신이 가진 절대가치를 내려놓게 되는 여정이기도 하다. 일단 익숙한 환경을 떠나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곳에 이르면, 전에는 당연하고 상식적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기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대면하게 되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과 어색한 환경에 당황하고 힘들어하지만, 그것 또한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결국 왜 그런지 이해할 때 즈음 비로소 진짜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거짓말처럼 예전에 살던 익숙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그래서 자신의 원래 모습을 남처럼 타자화他者化해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11
전통 한옥의 창문이나 방문에는 대체로 밖에서 문을 잠그는 장치가 없다는 사실을 눈여겨본 사람은 드물다. 집을 나설 때 문을 잠글 필요가 없었다는 의미다. 오래된 한옥이나 산사의 담장은 고개를 들면 집 안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낮다. 제주도 등에 아직도 남아 있는 옛 민가에는 대문에 나무 막대만 걸쳐 놓고 주인이 있고 없음을 알렸다. 이런 예들은 한국의 전통 사회가 얼마나 더불어 사는 이웃들을 신뢰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 준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3
잠깐 눈길을 본인 집의 현관 자물쇠로 돌려 보자. 1980~ 1990년대에 지어진 대부분의 아파트 현관문들이 아주 늦은 밤이 아니라면 닫혀 있되 (수동식 잠금장치라면) 잠겨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집 안에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그리고 지금 대낮이라면) 문이 자물쇠로 잠겨 있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카페나 도서관에서 노트북이나 핸드백으로 자리를 맡아 두고 마음 편하게 화장실에 가는 사람들이나, 아파트 현관 앞에서 온종일 주인을 기다리는 택배 상자 같은 한국의 흔한 일상은 서구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신기한 일화로 종종 소개될 정도다. 서구의 관점에서는 믿기 어려운 이런 현상은 기본적으로 이웃에 대한 무의식적인 신뢰가 바탕이 된 결과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낙관적인 도시관’이라 부른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24
다양한 사고방식과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도시 공간에서 공존하려면 저 사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애초부터 품지 않게 된다. 더군다나 한 나라에서 사용되는 언어나 종교마저 다르면 ‘공동의 선’ 같은 형이상학적 공동체 가치는 희미해진다. 모든 것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야 하고 문서로 명기되어야 하고 물리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생각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서구라 불리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그들의 문화를 계승한 미국 같은 나라가 겪어 온 도시 문화고, 이런 태도는 그들의 도시 곳곳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33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이 저서 『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에서 제시한 공간 개념. 개인과 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선호하고 감내하는 거리가 각 문화권마다 다르다는 것으로,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라틴 문화권 사람들이 독일이나 미국 같은 앵글로색슨 문화권 사람들보다 서로 가깝게 모이려는 성향이 강하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36
도시 시스템은 예측 가능한 모든 문제에 대해 ① 발생하지 않게 미리 예방하는 방향으로 ② 설치와 유지비를 최소화하면서도 지속적이게 ③ 만약 문제가 발생한다면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 주체에게 그만큼의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전략이 수립된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36
인류의 역사에서 20세기는 천만이 넘는 다수의 거대 도시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가 탄생된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18세기 말 서유럽의 산업혁명부터 촉발된 도시 집중화 현상은 한 세기 만에 지구상에 천만 인구의 서울보다 더 큰 도시를 20여 개나 만들었다. 보행자나 마차의 속도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던 도로는 자동차와 지하철에 맞게 재편되어야 했고,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에 살던 사람들은 지상 수백 미터 상공의 유리 상자 위에서 살게 되었다. -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1570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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