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리가 나가자마자 엘라는 침대에서 몸을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잠에서 완전히 깬 눈은 크고 강렬했다. 잠시 후 엘라는 다시 몸을 돌려 창문 셰이드 가장자리로 들어오는 가느다랗고 환한 빛줄기 두 개를 유심히 살폈다. 침침한 공기 속에서 미세한 먼지들이 춤추고 있었다. 작디작은 생명체들이 물속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엘라는 곧 도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얼굴 위로 두 팔을 포개고 잠든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 <플레인송>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765232 - P14
잠에서 깨기도 전에 가슴과 목에서 그것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빅토리아는 잠옷 대용인 헐렁한 티셔츠와 흰 팬티 차림으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가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한 손으로는 얼굴과 입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변기통을 부여잡은 채 웩웩대며 구역질을 했다. 이 발작으로 온몸이 피폐해졌다. 입술에서 침이 주르르 흘러내려 흔들거렸다. 침은 길게 늘어지고 또 늘어지다가 결국 끊어졌다. 빅토리아는 나약하고 텅 빈 기분이 들었다. 목구멍이 화끈거렸고 가슴이 쓰라렸다. 갈색 얼굴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창백해졌고, 높은 광대뼈 밑은 움푹 패고 누르스름하게 변했다. 검은 눈은 평소보다 더 크고 더 새까맣게 보였고 이마는 끈끈한 땀으로 번들거렸다. 빅토리아는 무릎을 꿇은 채 구역질과 발작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 <플레인송>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765232 - P16
빅토리아는 바닥에서 일어났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문간의 여자는 사십대 후반이었고 마른 몸에 얼굴은 수척했으며 몹시 지쳐 보였다. 막 잠에서 깨어 피곤한 듯했고, 축 처진 가슴 위로 얼룩진 푸른색 새틴 가운의 앞섶을 모아 쥐고 있었다. 머리는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적갈색이었는데, 염색한 지 꽤 되어서 관자놀이와 이마 위로 하얀 뿌리가 보였다. - <플레인송>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765232 - P17
너무 늦었어. 여자가 말했다. 네가 자초한 일이니 뒤처리도 네가 알아서 해. 네 아비도 맨날 기대려고만 했지. 아침마다 돌아오면 여기가 아프네, 저기가 아프네 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인 척하고. 너까지 징징대지 마. - <플레인송>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765232 - P19
정거장은 붉은 벽돌로 지은 단층 건물로, 지붕은 초록색 타일이었다. 침침한 대기실은 환기가 안 되어 퀴퀴한 냄새와 흙냄새가 났고, 교회 신도석 같은 등받이 높은 나무 벤치 서너 개가 철로와 매표소를 향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창문 하나에 검은 격자 철망을 쳐놓은 방이 매표소였다. 정거장 건물 밖으로 나가보면 철제 바퀴가 달린 낡은 초록색 우유 배달 마차가 서 있었다. 더는 쓸 일이 없는 마차였다. 하지만 플랫폼에 서 있는 모습을 무척이나 맘에 들어 한 역장 랠프 블랙은 마차를 그대로 놓아두었다. 랠프 블랙은 할 일이 많지 않았다. 객차는 홀트에서 오 분만 정차했고, 오 분이면 승객 두세 명이 기차에 타거나 내리기에 충분했다. 수화물차의 남자가 <덴버 뉴스>를 기찻길 옆 플랫폼에 떨어뜨리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삼실로 묶어놓은 신문 뭉치는 아래쪽이 거친 조약돌에 찢긴 채 아직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 <플레인송>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765232 - P22
복사기 손잡이를 돌리느라 손과 팔이 빠르게 돌아갔고 엉덩이가 함께 움직이면서 치마가 들썩이고 흔들렸다. 검은 치마와 흰 블라우스 차림에 은제 장신구를 주렁주렁 걸친 매기는 키가 컸고 건강해 보였으며 머리색은 검었다. - <플레인송>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765232 - P36
부인이 발을 끌며 뒤로 물러났고 아이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덥다 못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온갖 물건으로 가득했다. 소포 상자들. 종이들. 옷더미들. 높이 쌓인 누런 신문들. 꽃 화분들. 원형 선풍기. 사각형 선풍기. 모자걸이. 순서대로 모아둔 시어스 통신판매 카탈로그들. 한쪽 벽에서 내려 펼친 다리미판 위에는 식료품이 가득 든 종이봉지들이 한 줄로 세워져 있었고, 방 한가운데 놓인 나무 장 안에는 텔레비전 위에 더 작은 휴대용 텔레비전이 머리처럼 얹혀 있었다. 텔레비전 뒤쪽에는 해진 팔걸이에 작은 수건들을 올려둔 안락의자가 있었으며, 그 옆 창문 앞에는 빛바래고 길쭉한 소파가 있었다. - <플레인송>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765232 - P72
바람 없이 맑고 쾌청한 11월의 어느 날이었고, 아직 오후 시간은 충분했다. 등 뒤로 늘어진 그림자가 시꺼먼 흙길에 널브러진 걸레처럼 보였다. 길은 가루처럼 건조했다. - <플레인송>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765232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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