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병사는 기껏해야 2~3일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온갖 고통은 그가 죽을 때까지의 이 기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아직은 몸이 마비 상태라 그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 시간만 있으면 그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고래고래 단말마의 비명을 지를 것이다. [……]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년 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 본문 중에서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0793 - P5

우리는 지금 전방에서 9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어제 전방에서 이곳으로 교대되어 온 것이다. 지금 우리는 흰 콩에다 쇠고기를 잔뜩 먹어 배가 부르다. 만족스럽다. 심지어 어제저녁에는 다들 반합에 음식을 가득 담아 먹었다. 게다가 소시지와 빵은 2인분씩 나오기까지 했다. 이런 일이 실로 얼마 만이던가.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은 취사병이 직접 음식을 나누어 준다. 그는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나 숟가락으로 오라고 불러서는 반합에 음식을 가득 채워 준다. 마치 그는 어떻게 하면 취사차의 음식을 다 비울 수 있을까 하고 전전긍긍하는 것 같다. 차덴과 뮐러는 어디선가 세숫대야를 몇 개 구해 와서는 여분의 음식을 넘칠 정도로 가득 담아 왔다. 차덴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음식을 탐하기 때문이고, 뮐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만일을 위해서다. 차덴은 그렇게 꾸역꾸역 먹어 대는데도 그게 다 어디로 가는지 모두들 궁금해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그는 예나 지금이나 멸치같이 비쩍 마른 말라깽이이기 때문이다.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0793 - P10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년 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엎드린 채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땅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을 뒤집어 보니 그가 죽어 가면서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된 것을 마치 흡족하게 여기는 것처럼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0793 - P409

군인에게는 소화와 배설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친숙한 영역이다. 군인이 사용하는 말의 4분의 3은 이 영역에서 나온다. 아주 기쁠 때나 아주 화가 났을 때 쓰는 표현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문구가 대부분이다. 다른 방식으로는 그 상황에 딱 들어맞는 표현을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집에 돌아간다면 우리 가족이나 우리 선생님은 적이 놀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말이 누구나 쓰는 보편적 언어임은 부인할 수 없다.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0793 - P19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한 사람들은 뭐니 뭐니 해도 가난하고 단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즉각 전쟁을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이라면 전쟁의 결과에 대해 더 명확히 알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0793 - P24

우리 또래가 어른들보다 더 정직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우리보다 나은 점은 상투어를 사용하고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능력뿐이다. 처음으로 쏟아지는 포탄을 뚫고 돌격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포화를 맞으면서 그들에게서 배운 우리의 세계관이 무너지게 되었다.

그들이 아직도 글을 쓰고 떠벌리는 동안 우리는 야전 병원과 죽어 가는 동료들을 보았다. 이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 최고라고 지껄이는 동안 우리는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0793 - P26

케머리히는 고개를 끄덕인다. 손이 밀랍 같아서 나는 그의 두 손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손톱 밑에는 참호에서 묻은 흙이 아직 끼어 있다. 손톱은 독처럼 검푸른색이다. 문득 케머리히가 진작 숨을 멈추고 난 후에도 그의 손톱이 계속 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유령 같은 땅속의 버섯처럼 길게 말이다. 나는 그 광경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손톱이 코르크 마개 뽑이처럼 구불구불 자꾸만 자꾸만 자라나는 모습이. 이와 더불어 뼈만 앙상해지는 두개골 위의 머리털도 비옥한 땅 위의 풀처럼, 바로 그 풀처럼 자라나는 모습이. 그런데 이게 어디 있을 법이라도 한 얘긴가?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030793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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