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종종 회자되는 ‘오야가차’라는 말이 있다. 부모를 뜻하는 ‘오야‘에, 장난감 캡슐을 자동판매기에서 무작위로 뽑는게임을 지칭하는 ‘가차’가 붙어 ‘오야가차‘이다. 한국어로 ‘부모 뽑기 게임‘ 정도로 옮겨지는 젊은이의 은어이다. 부모를 뽑기장난감에 비교하는 표현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말은 "오야가차에서 꽝이 나왔다"라는식의 자학적 뉘앙스로 자주 쓰인다. "부모를 잘못 만난 탓에 인생이 꼬였다"라고 한탄하는 일종의 풍자인 것이다. 뽑기 게임의 승패는 오로지 운에 달려 있다. 모두 선망하는 ‘레어템‘을 뽑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몇몇 운 좋은 아이들뿐, 대다수의 아이들은 흔해빠지고 변변치 않은 장난감을 뽑고 자신의 불운을 탓한다. - P35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사회학자 울리히 벡 Ulrich Beck이 주장한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개념을 자주 떠올린다. 그는 근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윤택하고 안락한 삶을 선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위기에 인류를 노출시켰다고 주장한다. - P42
한국과 일본은 OECD 가입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매우 큰 두나라(2017~2020년 기준 OECD 성별 임금 격차는 한국이 31.5퍼센트로 꼴찌, 일본이 22.5퍼센트로 꼴찌에서 세 번째)이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일하는 여성의 노동 조건이 남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뜻이다. - P58
일본의 디지털 대사전에 당당하게 수록된 ‘여자력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는 능력, 혹은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줄 아는 능력‘이라고 그럴싸하게 정의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참으로 난감하다. 자신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미의식‘, ‘철저한 자기관리‘, ‘부드러운 말솜씨‘, ‘요리 솜씨를 가꾸는 것‘ 등 남성의 구미에 맞는 여성을 묘사하는 항목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 P61
사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차별로 볼 것인가, 혹은 차이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정답‘은 없다. 관점에 따라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차별인가 차이인가 하는 추상적 논란보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개인을 억압하지 않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구체적 방법론을 찾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양성평등 문제는 ‘정답‘보다는 ‘해답‘이 필요하다. 일본도 한국도 아직 그 해답을 찾지는 못한 것 같다. - P62
종교적 신념이나 가치관 등에 따라 성정체성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과 평가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판단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LGBT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의 개인적 선택을 문제 삼아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해도 좋은가‘라는 점이야말로 이 문제의 본질이다. - P69
|